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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범생 Nov 11. 2023

작고 소중한 우리집, 이제는 다른 사람이 살아요

30년 넘은 소형 구축 복도식 실거주 아파트 매도기

무더웠던 올해 여름 한복판에서,

우리의 재산 1호이자, 구석구석 손 안간 곳 없는 첫 번째 신혼집이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좋은 추억을 쌓아가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이사 가야 하지 않을까?

3년 전 여름, 스물여덟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들어간 부동산에서 첫 번째 보금자리를 만났습니다. 10평대 소형 구축 아파트. 크기도 작고 나이가 저보다도 많은 우리집은, 아내의 디자인과 인테리어 사장님의 기술로 깔끔하게 바뀌었습니다. 매 순간 좋은 추억들로 채워갔던 우리집. 이 정도면 둘이서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둘씩 쌓이는 짐들과 놀러 오신 부모님께 거실 밖에 내어드릴 수 없는 상황에 이제는 이사를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현재에 안주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막상 집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살기 편한 이곳을 떠나기 귀찮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서 꽤 오래 망설였습니다. 우리집까지 불어왔던 부동산 상승 바람이 멈추고, 2023년 초에는 시장 자체가 차갑게 얼어버렸는데 이 타이밍에 집을 내놓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고, 열심히 추진 중인 아파트의 리모델링 사업도 있는데 그냥 기다려도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팔아야 할까? 세입자를 들여야 할까?

작고, 오래된 우리집. 인테리어 공사로 고칠 수 있는 부분들은 깔끔하고 멀쩡했지만 작은 공간의 한계와 오래된 수도관, 낮은 천정과 얇은 벽들로 인한 소음 같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가겠다고 결정한 우리에겐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매도한다 vs 전세 세입자를 들인다. 


우리에게 가장 쉬운 선택지는 전세 세입자를 맞추는 것이었어요. 최근 3년 내에 예쁘게 인테리어 한 우리집. 호불호가 없도록 깔끔한 인테리어 디자인 컨셉을 정해준 아내 덕분에, 우리 아파트 단지 말고도 주변 비슷한 평형 아파트의 어떤 집보다도 우리집이 예뻤습니다. 전세를 맞추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2023년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매수를 하지 않으려고 했고, 전세와 월세 거래는 오히려 전보다 조금 더 많아지는 분위기였어요. 


이 선택의 장점으로는 소형 평수지만 1기 신도시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오래 보유하면 언젠가 새 집이 될 복권 한 장을 들고 간다는 것입니다. 수리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세를 맞춰도 크게 손이 갈 부분도 없었고, 무엇보다 입지가 나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일정금액(매수한 금액 - 전세금)이 이 집에 묶여있게 되고 다른 곳의 집을 구할 때 사용하는 돈이 줄어들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추가로 당시에 이미 다주택이었던 우리가 이 집을 보유하면서 다른 집을 또 매수하게 된다면 그때는 세금적인 불이익과 불확실한 부동산 시장에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2023년 차갑고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 우리집을 매물로 내놓는 선택을 했습니다. 2022년 좋았던 가격에는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지만, 우리가 샀던 가격보다는 높은 가격으로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신 우리집이 최고점에서 떨어진 것보다 더 많이 떨어진 더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찾아두었어요.


여보세요~ 집을 좀 내놓으려고 하는데요.. 

얼어붙은 시장 속, 작고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를 내놓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매수는 기술, 매도는 예술이라는 투자 격언처럼, 집을 파는 건 사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어요. 집을 파는 건 물건을 파는 것처럼 홍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집의 어떤 좋은 점을 보여줄 수 있을지, 부동산 사장님들이 우리집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집은 다른 집보다 인테리어가 훨씬 잘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우리는 집 전체를 청소하고, 정리하고, 필요 없는 짐들을 싹 치운뒤에 예쁜 우리집 구석구석을 사진 찍었습니다. 사진을 다 찍고 난 뒤에는 집을 굳이 보지 않고도 소개해줄 수 있도록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현관부터 침실, 주방, 거실까지 집 보러 오신 분들이 걷는 동선대로 영상을 찍고 정리를 해두었어요.


다음은 어떤 부동산에 내놓을지 고민했습니다. 우선, 소형 구축 평형인 만큼 비슷한 평형대를 찾는 분들이 몰리는 부동산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변 경쟁 매물이 될 거라고 생각되는 단지들을 찾고, 각 단지 매물을 가장 적극적으로 거래하시고 네이버 부동산 집주인 인증 숫자가 많은 부동산들을 골라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집을 좀 내놓으려고 하는데요..."


퇴근하고 부동산가서 인사드리기 

전화를 드리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신 부동산 사장님들께는 예쁘게 찍은 집 사진들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직접 방문해서 인스턴트커피들을 가득 채운 쇼핑백을 드리면서 요즘에 분위기는 어떤지, 우리집이 얼마나 이쁜지 소개도 시켜드리고, 찍어둔 영상도 보여드리고 하면서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습니다. 


거의 매주 부동산에 갔습니다. 퇴근하면 부동산에 가서 요즘에 어떤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우리가 내놓은 가격은 어떤지, 주변에 새롭게 거래된 이야기도 듣고, 집 보러 왔던 분들이 왜 안 한다고 했는지 이야기도 들으면서 앞으로 우리집을 어떻게 팔고 홍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한편으로는 부동산에 자주 가면서, '왜 집을 살 때는 이렇게까지 부동산에 자주 가서 알아보지 않았을까' 하며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매주 찾아오시는 집 보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출근하기 전에도 퇴근한 후에도, 주말에도 항상 깔끔하게 청소하고 정리하고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청소와 함께 몇 개월을 보냈어요. 


그렇게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2023년 뚝 떨어진 부동산 가격이 다시 상승하는 기류가 드디어 소형 구축 아파트에도 닿았습니다. 더위에 지쳐 팥빙수를 배달시킨 어느 날, 팥빙수가 채 도착하기도 전 매도 계약서를 쓰러 지금 바로 오라는 부동산 사장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우리집은 다른 사람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작고 오래된 소중한 우리의 첫 집을 팔고 새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이 오셔도 방을 내어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녕, 소중했던 우리의 첫 번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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