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2년 전,
불타오르던 부동산 분위기에 힘입어 전국 이곳저곳 아파트 찾아 누비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도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지방 거점 도시들도 활황이었어요.
그때 투자한 물건의 전세 계약이 만료되어 얼마 전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러 다녀왔습니다.
꿈과 현실은 다르다
2022년에는 부동산 상승장의 끝무렵이었어요. 전국 여러 지역이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규제지역으로 묶여있었고,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해 거래량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22년 말, 가파른 금리 인상과 함께 부동산 시장이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어요.
22년 초, 여러 지역을 임장하며 투자 후보를 찾아다녔습니다. 대기업이 위치해 있고, 인구도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도시. 이 도시의 몇 개 아파트가 가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중 당시 상황에 가장 나아 보이는 물건을 골라 매수를 했습니다.
가치에 대한 나름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세금은 투자를 위한 입장권 비용'이라는 생각과 함께 취득세 8%를 지불했고, 매수 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전세 세입자를 구할 수 있었어요. (*취득세 중과된 부분은 다른 물건을 매도하면서 환급조건을 맞춰 경정청구로 돌려받았습니다)
그때는 이런 목표가 있었습니다.
전세 계약이 만기 되는 2년 뒤, 또는 계약 갱신청구권 사용이 만료되는 4년 뒤에 투자금의 2배 수익으로 매도하겠다고요.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많은 지방 아파트들처럼 가격은 10% 이상 하락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거래되었던 물건들이 2년이 지난 지금 매물로 나와서 물건은 쌓여갔고, 그중 상태가 좋은 매물과 급매 가격으로 나온 물건들만 거래되고 있습니다. 전세 가격도 10% 이상 같이 하락하자, 투자금액이 추가로 들어가는 게 부담스러운 투자자들과 다주택 포지션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물건을 계속 던지고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가격은 아닌데
기존 세입자분들께서 이사 가겠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야 오랜만에 다시 그 집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단지에 노는 아이들, 따뜻한 분위기의 동네, 넓은 전실과 방 3 화 2의 아파트. 제가 서울 근무가 아니라면 들어가서 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아파트 가격은 2020년도로 돌아갔습니다. 2019년 취업 후 처음으로 살았던 곳이 서울 가까운 경기도의 투룸 오피스텔 전세였는데, 그때의 오피스텔 전세금과 지금 이 아파트 매매가가 비슷한 정도네요. (그 오피스텔은 전세가가 5000만 원 이상 올랐습니다)
물가가 이렇게 올랐는데, 이 정도라니... 이 정도 가격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지방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안 좋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물건의 기준이 올라가 있는 것 같아요. 지방 도시에서도 상급지, 신축이 아니라면 쳐다보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저라도 지방 부동산 팔아서 수도권에 집을 사고 싶을 것 같아요. 굳이 지방에 실거주를 사더라도 동네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 정도만 찾게 될 것 같습니다.
전세가율은 꽤 높은데 가격은 언제 오를까?
현재 지방 아파트 중, 사람들의 관심 바깥의 아파트인 제 물건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현재 상황>
다주택자는 여러 규제들로 투자물건을 늘리지 않고 있고, 그들의 관심은 수도권에 쏠려있습니다.
실거주자들은 굳이 이 아파트를 매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돈을 조금 더 빌려서 상급지의 아파트를 매수하거나, 수도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급매물만 거래되고 있습니다. 매물이 쌓여갑니다.
전세 매물은 거의 없습니다. 그 지역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전세 물건을 찾게 됩니다. 그중, 수리 상태와 층, 향 등 물건의 컨디션이 거래되는 순서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저층도 거래됩니다.
원래는 위 사이클에서 전세 매물이 없으니 전세 가격이 점점 상승하고, 상승한 전세 가격이 어쩔 수 없이 매매 가격을 밀어 올려서 거래가 되지 않더라도 매매가격이 상승하게 된다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다음 요인이 등장합니다.
전세 대출 및 보증보험은 KB 아파트 단지 시세 X 90% 까지만 나옵니다.
보증보험이 되지 않는 물건들은 전세가 잘 나가지 않으니, 집주인들은 전세 보증보험이 가능한 최대 금액으로 전세를 내놓습니다. (전세 금액 끝자리가 100만 원 단위로 끊기거나 50만 원 단위로 나오게 됨)
그 와중에 급매물만 거래되므로, KB 시세가 조금씩 하락하거나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KB 시세가 하락하면 다시 그 가격을 기준으로 전세 시세가 매겨집니다.
전세대출과 보증보험 한도가 전세가율을 90%로 막고 있고, 높은 전세가율임에도 사람들은 매수를 하지 않고 전세만을 찾으니 전세는 나올 때마다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틀이 깨지려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어 전세 수요자가 쌓이고, 전세 보증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물건도 거래가 되어야 합니다. 또는, 투자자(다주택자)의 매수 환경이 갖춰져서 급매물이 소진되면, 그때부터 KB 시세가 상승하게 되어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전세가 상승은 전세입자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실거주자들도 해당 단지를 매수하게 되는 순환 고리가 생기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주택자에 대한 여러 세금규제가 있고 투자자에 대한 안 좋은 여론들이 많아서 쉽게 환경이 갖춰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처럼 수도권과 지방시장의 양극화가 극대화되어, 지방 부동산 시장에서 어려움이 계속 나타낸다면 언젠가는 다시 다주택자에 대한 여러 규제정책을 완화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담되지 않는다면 손실을 아직 확정하지 말자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행동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이번 전세가 만기되면서 투자한 물건의 가격이 떨어졌고, 역전세로 투자금이 몇천만 원 더 투입되었지만 이번 전세 만기 시기에 가격을 낮춰 매도하지는 않았어요. 다행히 수도권의 물건들에서 이번 상승장을 맞아 충분한 수익이 났고, 이 물건을 판다고 해서 그다음 상급지로 올라갈 만큼의 자금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투자한 물건의 가격이 떨어지고, 역전세가 나고, 전세를 다시 맞추는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많이 생겨서 당장이라도 손해 보고 팔아버리고 싶었지만, 이 물건을 판다고 해서 얻는 게 거의 없습니다. 손실의 확정, 간간히 오는 수리 연락에서 해방, 재산세 절약, 장기수선충당금과 전세계약에 따른 복비 등의 부대비용 정도겠네요.
지방 시장 분위기가 안 좋아서 떨어진 건 사실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위안을 삼아야 하는 건 과거 22년 초에 투자 후보 물건들로 골라놨던 것들 중에 제가 선택한 물건이 그나마 가장 덜 떨어졌다는 점이에요. (아래 그래프 중 빨간색)
이번에 맞춘 전세 만기가 다시 도래하는 2년 뒤, 4년 뒤를 보고 조금은 더 버텨보려고 합니다.
당시에 생각했던 논리와 판단 기준을 좀 더 믿고 기다려보려고 합니다. 인구가 빠지는 지역도 아니고 일자리도 꽤 많은 지역이니, 언젠가 상승 사이클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요
역전세를 맞았지만, 그래도 임대인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세월을 맞은 도배, 벗겨진 시트지, 아래가 불어버린 화장실 문. 새롭게 들어오는 신혼부부 임차인이 몇 년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제가 제공해야 하는 것들은 되도록 다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가격을 볼 때마다 조금은 아쉽고 속상하지만, 깔끔한 보금자리를 신경 써서 내어드리면 언젠가 좋은 일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요.
(집주인은 전세를 통해 세입자에게 돈을 빌리는 것과 같은데, 은행 이자만큼은 아니더라도 해야 할 도리는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볼 때마다 속상한 물건이지만, 마지막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버틸 수 있는 상황까지는 충분히 기다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