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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주 변호사 Nov 27. 2022

영화 <버닝> 리뷰 (1)

줄거리와 후기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버닝>은 2018년에 개봉했는데, 지인이 이 영화는 자신이 봤던 그 해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다고 했었다. 

공개된 줄거리를 보고 영화 내용을 익숙한 방향으로 추측했던 나는, 솔직히 이 영화가 아주 당기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달에 큰 기대 없이 한국 영화가 보고 싶어서 버닝을 봤는데, 그제야 지인의 감상평에 백퍼 공감했다. 


내가 올해 지금까지 본 영화가 92편이다. 이 기세로 가면 올 연말까지 100편의 영화 감상을 찍을 것 같은데, 아직 8편이 남았으나, 추측상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은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버닝>이 될 것 같다. 


브런치에 올리는 내용은 방송에는 부적합하다고 해서 나가지 못한 표현들을 그대로 넣었다.    




1. 영화 줄거리


영화는 택배 기사로 일하는 종수가 배달을 하는 중에 경품 행사에서 내레이터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경품 추천 번호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알고 보니 그 여자 아르바이트생 해미는 종수가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친구였는데, 종수가 잘 알아보지를 못하자 성형수술을 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해미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근황을 조금 더 알게 되고, 종수가 해미한테 관심이 생기려는 찰나에 해미가 종수한테 자신이 곧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는데 그동안 해미 집에 와서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한테 밥을 좀 주라고 부탁한다. 그리하여 다음날 자연스럽게 해미 집에 가게 된 종수는 고양이 ‘보일’이 보이지 않자, 고양이가 원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말하고 이 말을 들은 해미는 재밌는 생각이라고 답하더니, 이내 두 사람은 키스를 하고 성관계를 가진다. 


해미가 아프리카로 간 동안, 종수는 며칠에 한 번씩 해미 집에 들러서 고양이 밥을 주지만,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은 없고 대신 사료가 줄어들어 있고 배설물로 고양이의 존재를 확인할 뿐이다.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귀국하는 날 공항에 마중을 나간 종수는 반가움에 들떠 있는데, 해미가 여행에서 만난 벤과 같이 나타나면서 종수의 기대감은 깨지고 만다. 곱창이 먹고 싶다는 해미의 말에 세 사람은 귀국한 날 바로 서울의 한 곱창집에 가서 술 취한 해미의 여행 감상기를 듣다가 해미는 잠이 들어 버리고, 종수의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벤은 그냥 논다고 대답한다. 벤은 포르셰를 몰고 강남의 비싼 집에 사는데, 자신의 집에 해미와 종수를 초대해서 파스타도 직접 만들어주고 친구들의 자리에 초대도 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친절하고 나무랄 데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며칠 후 종수가 파주시에 있는 집에서 송아지를 관리하는 중에 갑자기 해미가 벤의 차를 타고 종수 집에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는다. 세 사람은 종수 집 앞에 의자를 놓고 술과 안주거리를 먹으면서 파주의 풍경을 감상한다. 벤은 자연스럽게 대마초를 꺼내 피우고 해미도 자연스럽게 따라 피자 종수도 얼결에 따라 피게 된다. 대마초에 취한 해미는 잠이 들고 종수는 취한 기운을 빌어 벤과 대화를 나누다가 벤이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말해주자 정신이 번쩍 든다. 해미가 대마초에 취해서 상의를 벗고 춤을 춘 것이 못마땅했던 종수는 해미가 벤의 차를 타고 떠날 무렵 해미한테 모욕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았음을 전달하고 그 말을 들은 해미는 기분이 상해서 가버린다. 그리고 그게 종수가 해미를 본 마지막 날이 돼버렸다.


그 후부터 해미와 연락이 닿지 않는 종수는 해미를 찾아다니는데, 먼저 해미의 집을 찾아가서 주인집을 속여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평소와 달리 말끔하게 치워진 해미의 집을 보고 놀라고 고양이는 원래 이곳에서 키울 수 없다는 주인집의 말을 듣고 믿기 어려워한다. 해미가 일했던 내레이터 모델 쪽을 찾아가도 해미하고 연락이 되지 않은지 좀 됐다는 답을 듣고, 해미가 다녔던 팬터마임 학원에도 찾아가고 해미의 어머니와 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도 가지만 어디서도 해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종수는 결국 벤을 찾아가서 해미의 근황을 확인하려 하지만, 벤도 해미가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말만 한다. 그 후 종수는 벤의 차를 미행하면서 벤이 주인 없는 고양이를 데려와서 키우는 것을 알게 되고, 벤한테 생긴 새 여자와 인사도 하고 역시 그 새 여자를 소개하는 벤의 친구들 모임에 동석하여 새 여자가 친구들한테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벤이 해미를 친구들한테 소개했을 때의 모습이 떠올라 기시감을 느낀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종수는 해미와 연락이 되었다면서 벤을 비닐하우스가 많은 곳으로 불러낸다. 벤은 포르셰 앞에서 종수를 기다리고 있고, 트럭을 타고 온 종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벤을 칼로 찌르고 벤이 포르셰로 도망치자 재차 칼로 찌른 다음 벤의 시체를 포르셰 안에 밀어 넣고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을 모두 포르셰 속에 넣은 후 기름을 붓고 라이터를 켜서 방화한다. 알몸으로 트럭으로 돌아간 종수는 운전을 하고 떠나고 영화 자막이 올라간다.




2. 영화 후기


버닝은 공개된 줄거리를 통해 추측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였다. 경제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게 된 종수가 벤한테 적대감을 느끼고 해미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를 추측하는 것은 너무나 뻔한 줄거리에 누구나 예상 가능한 흔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종수의 열등감이 묘사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고 그저 종수가 가진 복합적인 감정의 하나다. 종수는 훨씬 입체적인 인물이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실제로도 사람은 한 가지 감정만 느끼지 않고 그 감정도 시시각각 변하지 않는가. 


벤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일반적인 스토리에서는 부족할게 전혀 없는 벤이 좀 무례한 성격에 종수를 무시하는 모습으로 나오면서 악역을 맡는 게 자연스러운데, 버닝의 벤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표면적으로 벤은 정말 매너 있고 교양 있는 인물이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벤은 평생 처음 타볼 듯한 종수의 트럭을 타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종수의 낡은 파주집에 와서도 종수를 무시하지 않으며, 자신의 집에 종수를 초대해서 친절하게 대해주고 친구들한테도 스스럼없이 소개해주는 굉장히 예의를 갖춘 트집을 잡을게 별로 없는 사람이다. 


영화는 불분명함을 일부러 많이 던져 놓았고 그에 대해 답을 주지 않는다. 해미는 고양이를 실제로 키웠는지, 벤의 은밀한 취미는 문리적인 표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지 아니면 은유인지, 해미는 어릴 때 우물에 빠진 사실이 있는지, 가장 중요한 해미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영화는 어떤 것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위 대표적인 의문들에 대해 모두 상반되는 대답이 가능하도록 암시를 곳곳에 넣어 두었다. 고양이를 실제로 키웠다 아니다 두 가지 대답이 모두 가능하도록 영화 속에서 두 가지의 개연성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줄거리만 따라가면 벤이 해미를 살해했거나 적어도 벤에 의하여 해미가 어떻게 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해석이 가장 표면적인 해석이다. 하나씩 껍질을 벗겨서 내부로 들어갈수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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