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호 림 Aug 26. 2024

성수동 팝업 전시 오픈기 EP.1

가내 수공전(展) : 성수동에서 개인 팝업을 열었습니다?!

성수동에서 팝업 전시를 열었습니다. 기획 나, 주제 나, 제작 나, 설치 나, 운영 나, 철거 나, 예산 나, 홍보 나.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 팝업의 성지 성수에서 개인 팝업 전시를 열기까지. 
가내 수공전(展) 비하인드를 들려드립니다.



2024년 6월. 팝업의 성지 성수동에서 팝업 전시를 열었다. 

무려 65평의 공간에서 약 일주일 동안 어느 브랜드 담당자가 아닌, 그냥 ‘나’로서 내가 주제가 된 개인전. 무료 관람에 굿즈도 무료 나눔으로 수익성 제로! 오직 자아실현!이 목적인 전시였다.


자 여기까지 읽었으면 이런 생각이 들 거다.

‘그게 가능해?’
‘왜..해…?’


2024년 2월 기준, 300평 규모의 대형 건물 일주일 대관료는 약 1억 ~ 2억 원(출처 : "주말엔 '핫플' 대관료 1억"… 성수동 팝업스토어 열풍 '명암')이라고 한다. 내가 사용한 공간은 65평이니 대략 2천1백만 원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4년 차 주니어 회사원. 특별한 날 맛있는 거 먹을 정도의 평범한 수저에, 집도 대출받아야 겨우 빌리는 빚 있는 여자. 자아실현을 위해 일주일 2천1백만 원을 탕진할 만큼 돈도 없고, 배짱도 없다.



대관료 없이 성수에서 전시하기

어느 날 회사 동료가 내게 메신저를 보냈다.

“프로님, 혹시 공간 와디즈에서 전시회 열 생각 있으신가요?”



내가 공간 와디즈 전시 후보자로 낙찰된 이유는 2월 새롭게 런칭한 와디즈 팀펀딩 서비스 ‘렛즈’ 덕분이었다. 서비스가 출시되고 지난 4월까지, 나는 팀 펀딩 프로젝트를 열어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펀딩 프로젝트 보러 가기 : 오슬러에서 파리까지, 제 여행일기 훔쳐보실 분?)

팀펀딩 프로젝트 스토리. 4월 27일 목표금액 500,000원을 120% 넘은 600,000원으로 성공 종료했다.


운이 좋게도 우수 프로젝트에도 뽑혔다. 최우수 프로젝트에겐 공간 와디즈 전시 기회가 주어졌는데, 우수 프로젝트였던 내게도 기회가 오게 되었다.

우수 프로젝트로 뽑혀 와디즈 공식 인스타그램에 소개되었다.


내가 열었던 펀딩은 2019년 유럽 여행 에세이를 이메일로 보내주는 ‘여행 레터 구독’ 프로젝트로, 펀딩에 참여한 사람은 5월 16일부터 6월 16일까지 매일 한 편의 여행 에세이를 메일로 받았다. 참고로 5월 15일부터 6월 16일까지는 내가 2019년 유럽 여행을 한 기간이다. 여행레터는 5년 전 같은 날의 일기를 통해 함께 여행하는 컨셉이었다.


전시를 제안한 동료는 펀딩에 참여한 레터 구독자이자 하루도 빠짐없이 레터를 열람한 단골이었다. 레터 속 사진과 글을 좋게 봐주신 덕분에 나는 팝업의 성지 성수동에서 대관료 없이 팝업 전시를 열게 되었다.


태어나서 전시라곤 명절에 할아버지 방 하나 꾸며두고 친척들 불러 모아 재롱 전시한 것이 전부. 전시를 하게 될 공간 와디즈 지하 1층은 꽤 넓은 곳인데 다 채울 수 있을까, 허접하면 어쩌지, 돈은 얼마나 필요할까, 본업과 병행할 수 있을까. 수만 가지 걱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걱정보다 기대가 훨씬 컸다. 설렜다. 시작도 안 했는데 상상만으로도 너무 즐거웠다. 전시 주제가 내 이야기라서, 평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더욱 그랬는 듯하다. 

무엇보다 평범한 직장인인 내게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어!



전시 기획은 처음입니다만

‘여행 레터’라는 소재가 있었지만, 메시지가 필요했다. 여러 가지 물품을 한 곳에 벌여 놓고 보이는 ‘전시’가 아니라, 기호들을 선택해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껏 콘텐츠 기획자로서 글, 영상 등 여러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그 형태가 단지 공간에 있을 뿐이었다.

(여담으로, 기호학에는 통합체와 계열체라는 개념이 있다. 여러 기호 중 특정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선택 사용한 기호가 계열체이고, 그 계열체들이 규칙에 따라 모여 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통합체다. 그냥 대학 시절 기호학을 전공했단 사실 아니, 사람으로서 전공 지식을 엮고 싶어서 말해봤다. ㅋ)


가장 쉽게 전시를 구성할 방법은 ‘사진전’이었을 테지만, 그건 싫었다. 

유명한 사람도 아닌 가장 평범한 개인의, 일상적인 사진을 누가 보고 싶어 할까? (펀딩에 참여한 우리 아빠도 발송된 레터 서른 두 개 중 단 하나도 열람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여행 중 인스타그램에 마구잡이로 올린 사진과 전시에 사용할 사진은 뭐가 다를까? (같다.)

회의적이었다.


만약 어떤 메시지와 의도를 가지고 찍은 사진이라면 모를까. 사진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이렇게 멋진 곳이 지구상에 존재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 분명해 보였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전시와 기승전결이 확실한 전시를 하고 싶었다.


던지고 싶은 질문과 그 질문을 한다면 사용할 아이템 목록을 쭉 적어 갔다. 후보 1, 후보 2. 그 시기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질문이 더 구미가 당기는지 엄청나게 물어댔다. 

그렇게 정한 주제는 ‘사이드 프로젝트’ 더 정확히는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한 과정과 생각들’이 주제다. 이 주제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잊고 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끄집어내는 순간이 되었으면 했다.


자 정리하자면, 전시 주제는 사이드 프로젝트, 메시지는 ‘평범한 직장인인 저는 하고 싶은 일(사이드 프로젝트)을 이렇게 합니다, 당신도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그리고 아이템은 ‘과정’. 무형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고난이 펼쳐질 것이 뻔했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이것인 걸 어떡하나요.


(1) 2019년 유럽 여행, (2) 팀펀딩 렛즈 서비스, (3) 나의 렛즈 펀딩 프로젝트. 전시에서 사용할 ‘사이드 프로젝트’ 세 가지를 뽑았다. 어떻게 잘 연결할까. 고민이 될 땐 글쟁이인 나는 일단 기획 의도를 써본다. 입구에 전시할 소개문을 메모장에 적어 내려갔다. 전시의 맥락, 타당성이 세워졌다. 전시가 더 선명해졌다.

메모장에 적은 전시 기획의도



예고편 : Ep.2 
- 스토리텔링을 곁들여 전시 구성하기
- 비전공자의 전시 아이템 제작 (feat. 뚝딱뚝딱 삐그덕)


작가의 이전글 싫어하던 음식이 좋아졌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