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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림 Sep 24. 2024

영원히 잊지 못할 그 날 그 경기

미팅, 기량과 기술을 찾아서

경기. 일정한 규칙 아래 기량과 기술을 겨룸. 표준국어대사전.


기량과 기술을 뽐낸다는 의미에서 스무 살의 나에게 미팅은 하나의 경기와 같았다. 규칙은 단 하나, 솔로들로 사람 수를 맞출 것. 그 다음은 페어플레이 영역이다. 서로 호감을 갖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그 무엇도 없는(순결한) 이에게 눈치껏 양보하기. 이것은 두근두근 사랑의 경기에 환상을 가지고 있던 모태솔로, 그 시절 나의 스포츠 철학이었다.


과팅이었다. 상대는 전자과 14학번 선배. 여동기 단톡방에 과팅 소식이 올라오고, 연애든 뭐든 그저 미팅이란 행위를 호기심으로 기다린 신입생이 하나 둘 출전 의사를 밝혔다. 나는 누구 하나 쟁취해 승리하리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티켓을 획득했다.

미팅은 상대가 별로면 팀 경기가 되고, 마음에 들면 개인전이 된다. 그래서 함께 참여하는 구성원이 중요하다. 우리가 한 편이 되었을 때 술을 진탕 먹여 못난 상대를 퇴치해 줄 친구 하나, 조용히 인원만 채워줄 친구 둘, 같이 가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친구 셋. 우리 넷이 한 팀이 되든 서로 경합하든, 적어도 네 명 중에서 나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출전을 앞두고, 유행하는 서스펜더 원피스를 사며 각오를 다졌다. 장비에 광을 내듯, 평소보다 오백 원은 비싼 팩도 얼굴에 붙였다.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을 깨부순 건 갑작스런 우리 팀의 출전 선수 교체였다. 조용히 성별 균형만 채워줄 것 같았던 친구가 우리 과 미모 탑 에이스로 교체됐다. 에이스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다. 투덜거리는 나에게 다른 친구 한 명도 자기도 좋은 마음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있는 것들이 더 하네. 패배감이 들었다. 언짢았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미팅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전자과 선배들이 두 친구에게 관심을 보일수록 흥분은 부정적으로 고조됐다. 서스펜더 원피스가 장마철 갑옷처럼 불편했다.


‘흥분하지 말고 네 것 해라. 너를 믿어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경기 중 상대의 더티플레이에 흥분한 주인공 희도에게 코치가 말한다. 그의 말대로, 내 것을 했다면. 나에게 집중했다면 그날 미팅은 다르게 풀렸을지 모른다. 연애는 무슨, 사랑의 시옷도 모르는 스무 살 아마추어 선수는 자신의 기량과 기술을 다룰 줄 몰랐다. 첫 미팅에서 크게 깨진 나에게 두 번째 미팅은 없었다. 대신 내 매력이 더 돋보이는 다른 종목을 주체적으로 찾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 풋내나는 경기에서 졌지만 결단코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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