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많아 봐야 1년에 한 번 정도 지독하게 감기를 앓는다.
대부분은 목감기로 오는 편인데, 이번에도 예외 없이 목이 칼칼해져 오더니 급기야 침조차 목구멍 점막을 무참하게 도륙한다.
하루가 더 지나자 공기에게도 물성이 생겨 숨만 쉬어도 너덜너덜 해진 목구멍을 긁어대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나마 뜨거운 바람은 그중 제일 자비로워 덜 괴롭힌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 공기를 데우며 잠이 들었다.
목이 아프면 으레 뜨끈한 차를 끓여 마시는 것이 습관이라, 팔팔 끓는 물에 누룽지 티백을 넣어 끙끙거리면 마신다.
그러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이러스인지 균인지 모를 악독한 것들이 사정없이 난도질한 목구멍의 점막에다 이 뜨거운 물을 들입다 들이붓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싶어 진다.
아니다 다를까 목의 통증은 극심해져 갔다.
어이없지만.... 가장 괴로운 것은.... 밥 한 알이라고 들어가면 타들어갈 듯 쓰라려 오는 목구멍의 통증 때문에 여전히 왕성한 식욕을 애써 외면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목감기로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거나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목구멍을 쥐어 잡고 부대찌개를 삼키며 괴로워했다는…)
몇 달 전에도 잠깐 목이 아파 처방받아 놓고는 금방 좋아져 먹지 않은 약이 남아있었다.
아쉬운 데로 그거라도 먹으며 버티려다 도무지 차도가 없어 증상이 발생한 지 4일 만에 병원을 찾았다.
내 자랑을 하나 하자면, 나는 통증을 꽤 잘 견딘다.
출산을 세 번이나 할 때마다 극심한 산통을 견디는 내 모습을 보고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도 "어머님, 정말 참으시네요" 하고 말씀하셨다는 말씀!
눈 언저리나 목 뒷 점에서 시작하는 기분 나쁜 통증이 어깨를 타고 몸 아래 내장까지 내려와 니글거리게 만드는 ‘만성 편두통’을 20년간 견디며 살아왔다는 사실까지. 증거다.
웬만큼 아파도 끝이 있다고 믿으면 숨을 잠시 멈추고 통증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도 그럴 요량이었지만, 오늘따라 나는 너무..... 외로웠다.
그냥 날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나는 병원을 갔다.
내 목구멍을 살펴보고 단 번에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많이 아프시겠다."
목구멍에 얇은 막이 생겼는데 몸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정말 아프겠다는 말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성격에도 맞지도 않는, 되지도 않은 애교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네, 정말 아파요"
엉덩이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고 돌아오면서, 오전에 먹은 약 기운으로 몰려오던 잠을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탓이라고 몰고 갈까.... 눈물이 났다.
아니 아니, 사실은.
의사 선생님의 "많이 아프시겠어요" 그 한 마디가 너무 따뜻해서 너무 위안이 돼서, 그래서 갑자기 살 것 같아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 말이 너무 그리웠다는 것을 알아차려버려서.
하필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오전 내내 멀쩡하던 하늘에서 느닷없이 내리는 비까지 아주 타이밍 찰떡이다. 약 기운을 빌려 아무 생각 없이 기절하 듯 잠이 들기에.
우울하냐고 누눈가 묻는다면,
아니오.
더 위로받고 싶냐고 또 묻는다면, 역시
아니오.
그럼 어떻게 해줄까 마지막으로 묻는다면,
하던 대로. 아무렇지 않게.
온갖 파란 날씨가 꽉 채운 밀도로 내 어깨 위를 내려앉는데, 그걸 이고 지고도 쓰러지지 않고 멀쩡한 척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우주적인 에너지가 필요한지 알까?
날개 달린 듯 한 발을 디디면 가뿐히 100미터를 날아갈 것 같은 행복한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우울한 사람들. 그들의 체력과 멘털이 실로 얼마나 어마무시한지 안다면 함부로 우울하냐 물을 수도, 왜 우울하냐 물을 수도 없는.
함부로 그 짐을 들어주려고 알량한 선행을 베풀다 다리 풀리게 하지 말아 주길 얼마나 바라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행이지.
오늘 나는 감히 우울한 것이 아니다.
우울을 감당할 만큼 기운도 없고, 의지도 없다.
서럽고 억울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얘기한다고 별반 달라질 것도 없고, 무의미하게 허공 속으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란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거기다 얼마 없는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가 않다.
오해는 오해대로, 미움은 미움대로 그대로 두련다.
가까운 사람들의 위로조차 버거운 그런 날에.
모르는 사람의 무심한 한 마디가 사무치게 위안이 되어, '아 그렇게도 살아지겠구나' 싶은 날.
이런 날도 참 좋다.
비루한 행색에 비천하고 비련하며 어느 정도 비굴해 보이는, 조금은 비열한 입가의 미소와 상스러운 비속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지보다 잘 난 놈이 흘겨라도 보면 비겁하게 고개를 돌리며 세상을 비판하다 급기야 스스로를 비난하는... 지나온 삶들이 의뭉스럽고 비밀스러운, 비릿한 냄새가 나는 술주정뱅이가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며 찰지게 "시발" 하고 말하면.
나는 그게 또 그렇게 속이 시원해져, 또 하루가 이렇게 살아지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한 발걸음으로 행복해지는 날도 있다.
그리고 또 오랫동안 공허해진다.
그러다 아이가 싸 놓은 똥을 보고도 웃음이 나서 살아지고 살고 싶어지는 것이...
나는 아무래도 크게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잘 견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