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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r 25. 2021

나의 일상도 자랑이 되나요?

몇 주 전 우연히 가입한 인스타그램에서 알 수 없는 사진을 접했다. 한 차주가 차량 접촉 사고가 난 후 지하 주차장에서 찍어 올린 차량의 사진이었다. 한데 사진 속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도통 사고가 났다는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본인 차량의 정면에, 사진의 정면에 보이는 외국 자동차 회사 이름뿐이었다. 확대해서 찾아 본 결과 차량의 사이드 쪽에 가볍게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이렇다면 처음부터 차량의 사이드 쪽이나 훼손 부분을 찍어서 올렸으면 됐을 텐데 왜 정면 사진을 사용했던 걸까. 인스타그램을 뒤늦게 가입한 내가 눈만 껌뻑였던 순간이다.


또 다른 사진은 이랬다. 한 인플루언서(influencer) 였는 듯한데 아침 일찍 일어나 내추럴한 머리와 잠옷 차림으로 커피를 마시는 일상 사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사진 속에서 커피가 담겨 있던 금장 테두리의 커피잔은 3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고가의 커피잔이었다. 그 사람에게 그 부분은 정말 일상이었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상이기 힘든 부분을 '매일 이렇듯이' 올린 사진에 눌러진 좋아요의 개수는 엄청났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이런 사진을 좋아했다. 현실에서와 달리 여기에서만은 자랑이 미덕인 곳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자랑할 것이 있다. 내 차는 올해로 9년 정도 된 국산 차량이다. 처음에 신랑과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어서 신랑이 급하게 샀던 차인데 이 차는 우리를 추적추적 비 오는 날도, 왕복 4시간 정도 걸렸던 거리여도, 우리 둘 다 추위를 싫어해서 돌아다니기 힘들었던 겨울에도 우리를 지켜주며 결혼까지 안정적으로 하게 해 준 추억의 차다. 지금은 두 아이들을 안전하게 유치원, 학원까지 등 하원 시켜 주고 있다. 오랜 장롱면허 이후 운전을 시작할 때 시행착오로 생긴 옆 문에 난 흠집 자국은 작기도 하고 볼 때마다 웃음이 나서 없애지 않았다. 한 번은 이제껏 고장 나지 않던 자동차가 5일 동안 카센터에 맡겨져 마음 아프기도 했는데 그때 잠시 기계인 차도 아픈데 사람인 나야 언제까지 구석구석 건강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차는 그런 존재다. 인스타그램에 우리 차만의 익숙함과 든든함을 공유할 순 없을까?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사진을 올리고 싶다.


자랑할 것이 또 있다. 다른 사람들 사진에서는 똑같은 브런치들과 줄 서서 먹는 브런치 가게들 사진이 많은데 나는 아점으로 청국장을 먹는 것이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청국장 냄새를 싫어해서 시중에 파는 청국장들이 냄새가 안 나게 나오기도 하는데 나는 이 점이 아쉽다. 나도 어릴 땐 이 냄새가 싫었지만 먹을수록 맛이 괜찮아서 냄새가 안나는 것은 뭐랄까.. 청국장이 아니라 청국장 맛 요리 같을 정도다. 청양고추를 슥슥 썰어 넣고 냉동해둔 시래기와 돼지고기, 김치를 넣어서 먹는 이맛은 정말 넉넉하다. 겉치레와 가벼운 사회관계들 사이에서 청국장 같은 진함과 뚝배기 같은 온기를 사진으로 전하고 싶다. 나의 이 사진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이게 내 일상인데 나는 안되는 건가. 공유될 수 있는 일상은 따로 있는 건가.


한 컷에 담지 못할 내 일상
한 컷에 담은 네 일상
사진은 다르지만 가치는 같아

다 비슷한 사진들 속
주목받지 못한 내 일상의 또 다른 이름은
'너무 특별함'이 아니었을지

한 컷 일상일 수 없는 내 일상은
적어도 그들의 일상보다 벅찬 무엇.
보이기 힘들고 담기지도 않는 것을
'영향'이라 부르는데 반해
여기서는 보이는 게 영향이구나 싶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스타그램을 탈퇴했다. 나는 청국장을 뚝배기 대신 금장 달린 플레이트에 담는 일은 할 수 없고 아직 먹지 않은 음식을 맛있게 찍을 수는 더더욱 없다. 내 일상을, 나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좋아요하는 대열에 합류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모두가 쫓는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옷, 비슷한 장소들에서 찍은 사진들과 비교하면 분명 나의 일상은 비주류임은 맞지만 흔하지 않은 것은 곧 특별하다고 불리어 오지 않았나. 내 손 때, 익숙한 동선들이 만드는 오늘은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에 더 특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럴듯한, 만들어진 사진들을 위해 나를 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찾아보고 담을 수만 있다면 향기 나는 사진, 온기가 느껴지는 사진으로 가득할 매일매일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좋아요 보다 좋은 저마다의 자랑들을 사람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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