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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naim Lee Jan 08. 2023

프뢰벨의 철학

; 무너지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다시 쌓으면 되는 일이라고

나무블록 놀이가 있다 어린아이들은 주로 입으로 가져가곤 하는데 엄마들은 안돼 지지부터 외친다 아이에게는 음식과 사물의 개념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다 "그건 나무야 딱딱하지 그건 먹지 않고 이렇게 쌓거나 무너뜨리고 노는 거야." 하면서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쌓기보다는 던지거나 발로 차고 엄마가 애써 쌓은 블록을 무너뜨리고 그 소리를 듣고 웃을 것이다 그러면 같이 웃으면 된다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된다 그게 놀아주는 놀이다 아이에게 충분이 자극이 된 순간이 되었다 어떤 엄마들은 왜 무너뜨리냐며 블록을 정리할지도 모른다 이래라저래라 하며 본인의 방식대로 가르치려 들지도 모른다 나무블록 놀이라는 것의 본래 규칙이 그런 것이다 허물고 쌓고 발로 차고 던지고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것 언젠가 음식과 사물을 파악하게 되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다 입에 넣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쌓으면 다시 분해하고 해체하고 나서는 늘어놓거나 정리하게 되는 것들 쌓으며 기뻐하고 만들며 창조하고 붕괴될 때 허무함을 느끼는 철학이 깃든 놀이이자 장난감이다 특히 접합지점이 없는  블록일수록 더 그렇다 인간의 내면에 감춰둔 파괴욕망을 방출하는 통로이기도 할 것이다 며칠 전 동생과 전시회에 갔다가 잘 만들어진 작품을 보며 동생이 한 말을 떠올렸다


- 난 이런 작품을 보면 다 부수고 싶더라


한 일본의 육아평론가는 쌓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는 것과 무너뜨리는 것이 나무블록으로 유쾌하게 노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또한 나무블록 제작사 측에서도 와르르 쿵!이라는 그림책에서도 꼬마 요정들과 강아지가 나무블록을 높이 쌓는데 공룡이 나타나 나무블록을 무너뜨려도 "괜찮아, 괜찮아 와르르 무너지는 거 재밌어 우린 쉴 새 없이 쌓을 테니까 또 무너뜨려 봐"라고 말한다


구축, 붕괴, 재생


나무블록 놀이의 순환과정은 우리의 삶과 닮아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린 시절 엄마는 늘 완벽을 추구했고 놀이에서도 무너지는 것 흐트러지는 것 정리되지 않는 것에 극도의 강박을 보여서 한 번도 자유롭게 놀아본 기억이 없다 네 살 때 한글을 완벽하게 떼어야 했고 등교 전에는 덧셈뺄셈에 등교 후에는 곱셈 나눗셈 일기는 매일매일 그나마 나의 유일한 취미였던 종이 인형들도 어느 날 화형당했다


만일 어린 시절에 엄마와 놀면서 이렇게 무너뜨리면서 웃고 즐거웠다면 무너지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다시 쌓으면 되는 괜찮은 일이라고 말해주었다면 누구든 다시 무너뜨려보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을 키웠더라면 엄마와 아이가 바닥을 뒹굴며 노는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교감이 한 인간의 인생을 무의식을 그 세계를 어떻게 구축하고 붕괴하는지 안다면 알았다면 그렇게 함부로 자신의 멋대로 아이를 대하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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