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푸른 하늘과 빛나는 별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이것은 비가역적인 자연의 질서이며, 이치이다. [라라랜드]는 과연 꿈과 사랑의 관계에도 예외는 없는 것일까 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기반으로, 수많은 영화적 언어를 통해 관객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위플래시]의 각본과 연출을 통해 각인을 남긴 데미언 셔젤 감독은 오늘 소개할 [라라랜드]라는 작품으로 아카데미에서 최연소 감독상을 수상했다. 고전적인 작품들의 오마주를 비롯해 작품 속에 배치한 적지 않은 노스탤지어, 그리고 특별히 이원론적 세계관을 통해 환상과 현실을 오가지만 호도하지 않는 특유의 영화적 작법은 연출자의 의도를 드러내는데 아주 힘 있는 특별한 방법이었다. 이 영화는 보편적인 뮤지컬이나 로맨스 장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작품이다. 한 가지 장르의 국한성을 넘어 매인 플롯과 서브플롯의 다각화까지, 이 영화는 즉흥적인 재즈의 변주곡처럼, 틀 안에 가둘 수 없도록 짜인 구조를 띄고 있다. 매인 플롯이 사랑인 동시에 꿈이기도 하며, 서브플롯 또한 꿈같기도, 혹은 사랑 같기도 하다. 데미안 셔젤은 고전 영화의 종횡비인 시네마스코프를 활용함으로써 고전영화들에 대한 예찬 또한 표했다.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현실과 환상에 대한 영화, 그리움과 애틋함을 담아낸 작품, 모든 영화인들이 주목한 작품 [라라랜드]는, 단연 기념비적 작품의 반열에 오를 것임에 확신한다.
[라라랜드]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극 중 인물들의 특성과 방향성에 대하여 암시한다. 영화가 시작하게 되면 차례로 자동차들을 보여주며 차에서 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들려준다. 곧이어 (Another Day of Sun)이라는 음악이 흐르고, 음악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집결하여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환상 속 세계로 입장하는 듯한 장면을 선사한다.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타이를 맨 남자는 극 중 미아와 세바스찬을 나타냄과 동시에 중반부에 나오는
(A Lovely Night)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여자는 노란 드레스를 입고 있고, 남자의 의상 또한 후반부에 나오는 세바스찬의 복장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가사 또한 이렇다.
여자:
"나에게 스크린으로 오라고 불렀지."
“어느 날 깜깜한 극장에 앉아 내 얼굴을 본다면 알던 애라고 할 거야."
남자:
"난 매일 들어, 먼저 왔던 이들이 술집에 남긴 노래들.”
“내 노래를 듣고 꿈을 향해 나아갈 힘이 생긴다면 말이야."
배우가 꿈인 미아와 피아니스트로서 바를 운영하고픈 세바스찬, “먼저 왔던 이들이 술집에 남긴 노래들”이라는 가사는 세바스찬이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 전통주의자라는 점도 조망한다. 이렇게 꿈에 대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다 영화는 현실로 돌아온 이들을 프레임 안에 담으며 극 중 주요 인물인 미아와 세바스찬을 조명한다. 오프닝부터 영화의 강조점은 자동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은유적으로 관객들에게 드러난다. 자동차는 A라는 위치에서 B라는 목적지까지 도달하게 하는 장치이자 수단이다. 여기서 꽉 막힌 고속도로가 상징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길이
막혀 나아갈 수 없는 미아의 현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꿈이 목적지인 미아, 그리고 대사를 외우느라 길이
뚫린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정차해있는 그녀에게, 경적을 울려 앞으로 나가라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세바스찬이다. 세바스찬이 미아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메신저인 점은 그의 밴드 이름을 통해 확증된다.
인물들의 차를 보면 그들의 성향 또한 알 수 있다. 고전적이고 오래된 차를 타는 세바스찬은 전통주의자임과 동시에, 군중으로부터 구별된 아웃사이더인 반면, 미아는 중반부에 다시 나오듯 아주 흔한 프리우스를 타며 보편적이고 군중들 사이에 존재하는 획일적인 인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세바스찬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민감하고 두려운 반면, 미아는 (Someone in the Crowd - 두 번째 음악) 빛나지 못하는 군중 속 인물로 치부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영화에서 중요한 매개체가 '차' 인 만큼 극 중 인물들이 은유적, 그리고 실질적으로 있는 위치나 그들의 방향성은 영화의 맥락에 상응하여, 감독의 중요한 의도가 부여된다.
오프닝 장면의 막이 내리고 영화의 맥락은 자연스럽게 미아의 시점으로 연계된다. 아쉬운 오디션을 뒤로하고, 미아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영화는 시종일관 파란 색감을 통해 그녀의 일상을 담아낸다. 그녀의 방 뒤에 그려진 “잉그리드 버그만"[카사블랑카 (마지막 플래시 백 오마주)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포스터에도 그녀의 파란색 드레스가
돋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샤워를 하고 나올 때 화장실의 조명은 붉은색을 띤다. 그리고 그녀가 거울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자, 모든 조명이 어두워지며 그녀가 별처럼 홀로 빛나게 된다. 미아가 별이 되는 순간은 거울에 비친(스크린에
비친) 배우의 꿈을 상상할 때인 것 같다.
그리고는 (Someone in the Crowd)라는 음악이 나오며 친구들이 파티를 가자고 미아를 설득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나오는 가사는 그저 군중들 중 한 명인 미아가 그녀를 땅에서 띄워 줄 군중 속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아는 외부로부터 선택을 할 수 있는 결정권이 주어졌을 때 이를 거절하는 듯 보이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인물이다. 내키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파란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가지만 결국 붉은 조명이 빛나는
화장실의 거울을 보며 “그저 군중 속에 누군가인 자신을 한탄하게 된다.” 여기서 조명이 한번 더 어두워지는데 이는 군중 속 누군가가 아닌 미아라는 인물 그 자체로 바라봐줄 사람이 있을 때 별처럼 빛날 수 있음을 나타낸다.
파티장을 나간 미아는 자신의 차가 견인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그녀의 차가 견인됐다는 것은 그녀가
목적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차를 통해 갈 수 없게 됐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그녀는 어둡지만 푸른 도시를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서 빛나는 붉은 색감은 감독의 의도대로 강조되며, 그녀가 세바스찬의 연주를 듣게 되는 레스토랑 앞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붉은 색상은 그녀를 인도해주는 색상이며 역시 레스토랑 내부의 색감은 따뜻한 붉은색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세바스찬의 모습을 본 미아는 다시 한번 붉은 조명 속에서 어둠 속으로, 그리고 빛나게 된다. 세바스찬이 그녀를
땅에서 띄워 줄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암시이며 미아의 견인된 차가 그의 존재로 대체되게 된다는 구조적 설정이다.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인물로 말이다.
여기까지가 미아의 시점이며, 경적 소리와 함께 영화의 맥락은 플래시 백을 통한 세바스찬의 시점으로 연계된다.
영화는 세바스찬이 경제적으로 허덕이는 현 상황을 드러냄과 동시에 아주 간결하게 인물의 정보들을 나열한다.
꿈은 있지만 아직 방황하는 그의 모습은 미아와 매우 흡사하도록 연출된다. 그는 누나로부터 한 여자의 번호를 받게 되는데, 재즈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전화를 하지 않는다. (재즈를 좋아한다고 했어도 전화하지 않을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 이런 구조적 조응은 미아에게 주어진 선택권에 대한 결정과 대립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세바스찬은 외부로부터 결정권이 주어졌을 때 행동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성격은 후반부에서 틀어진다. (키이스가 권한 일자리를 받아들이는 것). 전 일자리로 복직한 세바스찬은 미아가 오디션에서 방해를 받듯이 그에게는 맞지 않는 음악을 연주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미아가 그랬듯, 세바스찬 또한 파란 계열의 남색 정장을 입고 있다. 그는 징글벨을 치다 프리재즈를 치지 말라는 사장의 말을 어기고 그만의 음악을 연주한다.
세바스찬은 이 장면에서 붉은 조명 가운데 점점 어두워지며 별처럼 빛나게 되는데, 이것은 그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 때, 비로소 별처럼 빛난다는 점을 조명한다.
크리스마스에 해고당한 그는 음악을 잘 들었다는 미아를 무시한 채 레스토랑을 나가버린다. 이처럼 초반부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의 상징성과 파란 색상의 상징성은 사랑보다는 꿈과 깊은 연대가 있도록 보인다. 이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게 된다.
봄에 그들은 하우스 파티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미아는 노란색 드레스를, 세바스찬은 역시 붉은색의 상의와 주황색의 하의를 입고 있다. 전에도 파란 색상으로 의상이 조응했듯이, 이번에도 같은 색상의 톤으로 둘의 의상은 조응한다.
미아는 파티에서 그가 어떤 음악을 연주할지 정해주며, 파티가 끝난 뒤 세바스찬을 “조지 마이클"이라는 가수로
불러 자신의 차키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후반부에는 “치킨 온 어 스틱"이 아닌 “셉스"라는 세바스찬의 클럽 이름을 작명해주기도 한다. 그녀는 이미 존재하는 세바스찬의 정체성에 새로운 것을 제시해 확립시켜주는 존재이다.
반대로 세바스찬은 미아를 군중으로부터 구별시켜주는 존재이다.
자동차 키를 보여주는 쇼트는 군중 속 누군가에 불과한 보편적인 미아를 나타낸다. 그리고 미아가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세바스찬은 군중 속에서 그녀를 찾아주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걷고 있는 와중 세바스찬은 차를 찾지 못하는 미아에게 조언을 한다.
"리모컨을 턱에 대, 암에 걸릴지는 몰라도 차는 빨리 찾을 수 있어."
이 대사는 즉슨, 목적지, 꿈을 빨리 이룰 수는 있지만 사랑은 지키지 못할 거라는 감독의 암시처럼 들린다. 음악이 (A Lovely Night) 흐르고, 이 둘은 서로에 대한 묘한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이 장면부터 두 인물의 의상 색상은 서로 다르다. 후반부에도 꿈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는 의상의 색이 조응하지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좀처럼 이 둘의 색상은 조응하지 않는다.
꿈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사랑에 빠졌을 때:
하지만 곧이어 미아의 남자 친구인 그렉에게 전화가 오게 되고, 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방해가 될 때
미아는 턱에 차키를 눌러 차를 찾게 된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꿈이라는 목적지에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듯하다. 사실 영화에서 가장 선명하게 레퍼런스 되는 [쉘부르의 우산]이나 [카사블랑카] 같은 작품들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결말을 그린 작품들이다. 이런 설정은 이 둘의 사랑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암시로서 작용된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꿈과 사랑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현실이 아닌 환상을 통해 말이다. 미아는 세바스찬을 만나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작품을 보기로 약속한다. 여기서 위치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미아는 세바스찬과 약속을 했지만 남자 친구와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렉과 그의 형과 식사를 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점은 미아를 제외한 모두가 현시대 극장의 대한 불만들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미아가
스크린으로 비칠 극장이라는 실질적인 위치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꿈에 대해 온전히 응원해줄 수 없는 그렉의 내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바스찬이 그 시점 존재하게 되는 실질적인 위치는 극장이다. 곧이어 세바스찬의 음악이 흐르고 EXIT이라는 싸인과 함께 미아는 현실을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시점에서 미아는
사랑하는 세바스찬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있는 위치가 극장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녀는 꿈(극장)으로 인도해줄 세바스찬, 사랑과 꿈 모두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극장에 간 미아는 세바스찬을 찾기 위해
스크린이 비치는 단상 위로 올라간다. 여기서 미아의 위치는 실질적으로는 극장 안이지만 은유적으로는 스크린에 비치는 영화 자체 내부에서 존재하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천문대 장면에 대한 해석은 이동진 평론가님의 의견을 반영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에서 [이유 없는 반항] 은 독자적 쇼트로서 [라라랜드] 프레임 전체에 담기게 된다. 그들이 키스로 사랑을 확인하려 할 때 필름이 고장 나고 미아는 세바스찬을 그리피스 천문대로 데려간다. 천문대는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장소임과 동시에 그 별들을 볼 수 있는 극장이기도 하다. 미아는 영화를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 인물이다. 이모랑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스튜디오 안에서 일을 하는 그녀는 영화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영화 외부에 존재하는 세바스찬과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아는 세바스찬을 영화 안으로 초대한다. 이 둘은 사랑이란 결실을 맺기 위해 영화라는 매개체 내부로 입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설정을 감독은 [이유 없는 반항]의 장면을 동일하게 연출시키는 점과 몽환적인 프레임을 연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표현한다. 이런 현실과 환상을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 감독은 인물들을 환상의 공간(우주)에서, 별처럼 춤을
추게 한다. 이렇게 확실히 그들의 사랑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환상이라는 요소가 가미되어 감독이 구별하는 방식으로 연출하는 게 보인다. (이동진 평론가님은 언제나 다채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해석하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작가님이신 것 같다). 꿈의 상징이었던 별이 상징성을 확장시켜 사랑이라는 개념 또한 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극적으로 사랑을 확인한 둘은 키스를 함과 동시에 이야기는 여름으로 전개된다.
여름이란 계절을 기점으로 미아의 차는 사랑에 금이 가고 꿈을 포기하기 전까지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영화의 맥락은 어딘가로 가려는 미아와 세바스찬은 일방통행인 길, 즉 한 방향으로 밖에 가지 못하는 길:
(꿈과 사랑 중 하나)에 잘못 들어 후진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사랑할 때 둘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후진할 수밖에 없게 되어, 꿈이라는 목적지와 멀어진다.
미아의 본 색은 녹색이다. 극장에 갔을 때 그녀의 드레스와 차의 리본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세바스찬의
색은 붉은색이다. 미아를 인도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서 이 둘은 각자 상징하는 색상이 뒤바뀐다. 붉은 색상은 미아를 상징하게 되고 반대로 녹색은 세바스찬을 상징하게 된다. 그 기점이 바로 라이트 하우스라는 재즈바에서 키이스를 만날 때이다. (술잔)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두 인물을 한 프레임 내에서 분리시킨다.
사랑에 빠진 이들 에게도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 오고, 세바스찬은 키이스가 제안한 직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세바스찬은 다시 파란 색상의, 꿈을 상징하는 옷들을 입지만, 뒤로 갈수록 파란 색상을
잃고 짙은 검은 의상들을 입게 된다. 이런 의상들은 자신의 퇴색된 꿈을 선택하는 세바스찬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표현한다.
영화는 키이스와 세바스찬의 대화를 담을 때, 혁명주의자와 전통주의자에 대한 대립적인 성향을 보여줌을 통해
같은 프레임에 두 인물을 배치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프레임으로 나누어 표현한다. 이처럼 영화에서 사상이 맞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 두 인물의 대화를 표현할 때 영화는 프레임 배치를 활용해 두 인물 간의 분리 감을 조성한다.
(City of Stars)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위치해 있는 현 상황에 대하여 탁월하게 설명해주는 음악으로서 작용한다.
꿈을 상징했던 별이 이제는 그들에게 사랑으로 남게 되어 서로를 비추어 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둘의
사이에도 균열이 생긴다. 세바스찬을 상징하는 녹색이 이제는 미아라는 인물의 붉은 색상을 집어삼킨다. 붉은색과 녹색이 공존했던 그들의 집에 이제는 붉은색이 점점 상실되고 만다.
이 점은 세바스찬이 했던 메신저로서의 능력에 대한 상실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어져 공연에서 미아는 세바스찬이라는 존재의 부재와 결핍으로 인해 결국 다시 군중 속 누군가(Someone in the Crowd)가 되고 만다.
그리고 미아에게 세바스찬의 상실은 꿈에 대한(파란색) 두려움과 자각으로 이어진다.
이제 집은 녹색 색상으로 꽉 차있다. 미아는 세바스찬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런 대화는 현실적인 논쟁으로 이어지고, 키이스와 세바스찬을 담는 카메라의 시선처럼 이 둘은 더 이상 한 프레임 내에 공존하지 않고, 각기 다른 프레임에 배치되게 된다.
연극을 망친 미아와 연극에 참석하지 못한 세바스찬이 서로를 마주할 때 이 둘의 색상은 완벽히 대조된다.
그리고 결국 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미아는 다시 자신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곧이어 미아를 잃은 세바스찬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 앞에서 경적을 울리며 영화의 시작인 고속도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아는 오디션을 보기로 마음먹고 그녀의 진정한 본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한번 그녀는 파란 계열의 옷을 입고 별처럼 빛난다. 카메라는 그런 그녀를 360도 회전하며 담는다.
오디션이 끝나고 둘은 처음으로 낮이라는 시간대에 그리피스 천문대를 간다. 사랑을 상징하는 별을 볼 수는 없지만 꿈을 상징하는 파란 하늘을 보게 된다. 의상의 색상은 둘 다 꿈을 선택했다는 듯 파란 계열의 색상으로 조응한다.
“우린 어디에 있는 거지?”라는 대사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서로의 위치와 상황에 대하여 둘은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몰랐던 미아와 세바스찬은 각자의 위치를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위치는 끝까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내면을 대사로 조명하는 훌륭한
방식이다.
결국 자신이 있는 곳에서 리허설을 하라고 했던 세바스찬은 미아를 따라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영화는 이제 5년이 흐른 겨울을 보여준다.
5년 뒤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미아의 집 앞에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다시 등장하지만 여기서는 그녀의 사진이 집 외부에 존재하고 색이 없는 흑백이다.
미아는 배우자가 생겼고, 딸이 생겼다. 이런 미아에게 다시 한번 붉은 조명은 세바스찬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미아는 그녀가 지어준 이름을 따서 재즈바를 연 세바스찬의 가게를 마주하게 된다. 세바스찬은 그녀를 알아보고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둘 다 실질적인 꿈을 이룬 상태이지만 세바스찬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주는 장면이기도 한 것 같다. 마지막 오디션 장면에서 미아가 홀로 빛나던 것 것과 달리, 세바스찬이 연주할 때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함께 빛나게 된다. 그리고는 [카사블랑카]를 오마주 하는 플래쉬백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가 했어야 했던
선택들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처럼 영화는 세바스찬이 상상하는 결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카메라가 세바스찬을 360도 회전하며 그를 담을 때 그는 미아에게 키스를 하고 있으며 별처럼 빛나지도 않는다. 그는 어쩌면 별이 되고 싶지도, 실질적인 꿈을 이루고 싶지도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꿈은 미아와의 사랑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세바스찬의 클럽 내부는 이루지 못한 꿈, 즉 파란 색상으로 물들여져 있는 것이다. 우주에서 춤을 췄듯이 그들은 별이 빛나는 세트장에서 춤을 추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앉아서 영화를 보게 되는데 그 영화에는 그들의 신혼 생활이 담겨있다. 이것은 어쩌면 상상 속에서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영화 같은 일이라는 것을 인지한 세바스찬의 자각과도 가깝게 느껴진다.
세바스찬의 상상에서는 차를 탄 미아에게 더 이상 붉은 조명이 비치지 않는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미아와 세바스찬은 시간이 지나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사실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
이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한 "프레임" 내에 공존했다, 여름이 되어 "같은" 차를 타고 후진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꿈을 이루고 난 뒤, 그들은 비로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눈을 마주쳐" 전달한다.
비록 "같은 프레임" 안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그들의 인생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과 꿈은 어쩌면 물과 얼음의 관계일 것이다. 같은 성질이지만 다른 형태인 것처럼 말이다. 녹아서 사라지길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아이 같기도, 녹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미련하기도 하다. 하지만 녹는 과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내해야 한다. 아주 조금씩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 영화는 조금이라도 그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다면, 녹는 과정을 외면하지 말고 현실에 비친 꿈과 사랑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수 없이 실패한다는 것은 수 없이 도전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증거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수많은 꿈 꾸는 바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한 줄 평: 그 어떤 단어의 조합으로도 표현할 수 없던, 극장에 앉아 처음으로 영화와 사랑에 빠졌었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