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투쟁기를 읽고…
나는 깻잎을 좋아한다. 요즘에는 최대한 육식을 줄이려고 하고 있지만, 나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 삼겹살과 마늘을 쌈장에 찍어 깻잎에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잘 구운 삼겹살에 마늘과 쌈장을 넣어 깻잎에 싸 먹을 때의 행복은 나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때에 따라 시세는 다르지만 마트에 가면 깻잎 두 묶음 정도가 들어있는 한 봉지가 대충 천몇 백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비싸도 2천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에게 주는 행복을 감안한다면 미안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다. 그렇게 열심히 깻잎을 먹었지만, 그 깻잎 뒤에 어떤 노동이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깻잎 투쟁기⌟는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우춘희 선생님께서 2022년에 쓴 책이다. 작가는 2015년 미국에서 농사를 지었던 경험 때문에 한국의 농업 생산자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혹은 필연적으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020년 여름에 깻잎밭으로 유명한 마을에서 몇 달간 머물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이주노동자들이 불러온 지역 사회의 변화 등을 보게 되었고, 농촌을 구성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주노동자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난 나에게 우춘희 작가가 해주는 이야기는 모두 생소한 것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이나 인식이 없었다. 그냥 선주민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주는 외국에서 온 노동자 정도로만 생각했다. 내 주변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장님이 사인 안 해주면 나는 불법 사람이 돼요. 다른 비닐하우스에 가서 일을 하다가 잡히면 나는 돈도 못 받고 캄보디아로 가야 해요. 사장님한테 돈도 못 받고 쫓겨나요.
⌜깻잎 투쟁기⌟, 우춘희 저, 교양인, 2022. p55
이 책에서 위 대목을 읽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 우리는 허가받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을 소위 ‘불법 체류자’라고 부른다.
‘불법 사람’
사람이 불법일 수 있을까? 무단횡단을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절도를 해도 우리는 우리가 한 행위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이지 그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불법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반면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초과 체류로 인해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낙인 지어져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 자체를 불법으로 낙인찍는 일을 혐오를 조장하는 일이기에 국제사회에서는 ‘미등록’이나 ‘비정규’ 같은 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고 한다.
미등록 외국인을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것에는 실질적인 문제도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그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코로나19가 퍼지자 미등록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백신을 접종하거나 동선을 추적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해지게 되었는데, ‘불법체류자’라고 명명하는 한 이런 추적관리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20년 4월 정세균 총리는 ‘불법 체류자’라는 말 대신에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코로나 관리를 위한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국가기관이 불법 체류자라는 말 대신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71992)
이 책을 보면서 마트에 가면 사 먹을 수 있는 깻잎, 배추, 마늘 등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저렴한 농산물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주노동자의 저렴한 노동력 덕분에 우리의 밥상 물가는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노동이 없다면 깻잎 한 단의 가격은 얼마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공산품 역시 이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이런 현실에 대해 좀 더 생각을 갖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책을 통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그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은 많이 제시되고 있지 않아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우춘희 작가님 탓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십 년간 쌓인 구조적인 문제인데, 이걸 한방에 해결할 방법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인지를 하고 이걸 바꾸기 위해 우리의 밥상과 소비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