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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Apr 07. 2023

깻잎 투쟁기-2

이주노동자를 얽매는 고용허가제

    스물두 살의 캄보디아 여성 쓰레이응 씨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2015년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렇게 들어와서 2016년 8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하루 10시간, 한 달에 2번 쉬면서 3년 7개월 간 받은 임금은 고작 950만 원이다. 나머지는 하나도 받지 못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최저임금으로 계산해도 ‘6천만 원’이 넘는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쓰레이응 씨는 나중을 대비해서 자신이 노동한 시간을 수첩에 차곡차곡 기록해 두었으나, 고용주는 이를 빼앗아 태워버렸다. 게다가 쓰레이응 씨가 계속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자 고용주는 기숙사 방문을 부숴 버렸고, 그 길로 쓰레이응 씨는 도망쳤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고용주를 고발하고 쓰레이응 씨의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고용주는 뻔뻔하게도 벌금을 내면 된다는 식으로 나왔다. 결국 MBC를 통해 보도가 이루어지면서 문제 해결에 속도가 붙었으나, 법원에서 밀린 임금으로 인정된 금액은 고작 3천만 원이었고, 이마저도 고용주는 지급을 하지 않았다. 결국 고용주를 사기죄로 고소했지만, 형사조정위원회에서 현재 사정이 어려우니 3천만 원 중에서 1700만 원만 받고 합의를 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책에 나온 부분은 여기까지인데, 다른 기사를 찾아보니, 결국 쓰레이응 씨는 그 1700만 원도 받지 못한 듯하다. 3년 7개월 동안 임금을 못 받으면서도 쓰레이응 씨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엇이 쓰레이응 씨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을까? 이런 일의 가장 밑바닥에는 “고용허가제”라는 것이 있다.

(운 나쁜 쓰레이응씨? -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3134.html )


    국회입법조사처에서 2022년 6월에 발행한 ⌜농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주요 대응정책과 향후과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2012년 64.4세에서 2016년 66.3세를 거쳐 2021년 67.2 세에 이르렀다. 2021년 기준으로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은 46.8%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일할 사람이 없다면 일할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고용허가제’라는 것을 통해 인력을 ‘수입’한다.


    고용허가제는 문제가 많았던 산업연수생 제도를 대체해 2004년부터 시행된 제도이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농촌에 인력을 체계적으로 ‘공급’ 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이 고용허가제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는 고용주에게 유리한 사업장 변경 권한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본인이 일하고 있는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고용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물론 고용주가 불법을 저지른다면 고용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지만 이를 이주노동자 본인이 입증해야 한다. 동의를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운이 좋아 사업장 변경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3개월 안에 새로운 사업장을 찾아야 한다. 사업장 변경이 이렇게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사업장 변경은 3년 동안 3회로 제약된다. 쓰레이응 씨가 사업장을 옮기지 못한 이유는 이것만은 아니다.


    고용허가제에는 ‘성실외국인근로자’라는 제도가 있다. ‘성실함’을 국가가 지정해 주다니 처음 들었을 때 이름이 퍽이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성실근로자 제도는 국내 취업활동 기간(4년 10개월) 동안 사업장 변경 없이 성실근로 후 자진 귀국한 외국인근로자는 3개월 후 재입국하여 다시 4년 10개월간 일할 수 있는 제도이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넘어와서 일하는 것에는 많은 돈이 든다. 동시에 고용주 입장에서도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계속 인력 공급이 필요하다. 그런 필요로 인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주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성실근로자 제도를 통해 4년 10개월을 일한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고, 고용주 역시 계속해서 일할 노동자가 필요하다. 고용주들은 이 성실근로자 제도를 때로는 채찍으로 때로는 당근으로 쓰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사용한다. 사업장 변경 권한 및 성실근로자 제도를 보면서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는 보면 볼수록 중소기업과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메꾸기 위해 촘촘하게 설계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용허가제가 처음 시행됐을 당시 이주 노동자가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3년이었다. 그러나 2007년 현장에서의 인력 부족으로 인해 3년 근무 후 1개월 본국에 머무르고 다시 돌아와서 3년 더 일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되었다. 그 후에도 변경이 있었는데, 2009년에는 한 번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3년에서 4년 10개월로 늘어났다. 그러나 노동력 부족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여, 2011년에는 '특별한국어시험 재취업제도'를 통해 시험을 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며, 2012년에는 성실근로자 제도를 통해 4년 10개월을 일한 뒤 3개월 본국에서 휴가를 취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그런데 왜 하필 4년 10개월까? 국적법 제5조에 따르면 5년 이상 계속해서 한국에 머무르면 영주권 신청과 귀화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를 막기 위해 5년에서 2개월 부족한 4년 10개월을 최대 체류 기간으로 정한 것이다. 이는 이주 노동자의 인력만 이용할 뿐 그들이 한국에 정착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용허가제에서는 외국인을 고용하기에 앞서 내국인 구인노력을 하게 되어 있다. 일반외국인구인절차의 1번이 내국인 구인노력이며, 내국인을 구인하기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하면 그 때야 비로소 외국인 고용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이주노동자가 와서 채우는 자리들은 내국인들이 일하러 오지 않는 곳이다. 어찌 보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해야 할까? 이처럼 정부는 내국인들로 채우기 어려운 자리를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로 채우고 있고, 이것을 더 확대하고 싶어 한다.

    

    2022년 12월 정부는 고용허가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결국 정부의 개편안을 들어보면 이주노동자를 더 긴 기간 동안(4년 10개월 → 10년), 더 넓은 산업 영역(일부 상, 하차 직종도 추가)에서 사용하겠다는 것이 이번 개편안의 주요 내용이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라 어떻게 노동력을 더 끌어올까라는 정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개편이었다.

(장기근속 숙련 외국인근로자는 더 오래 함께 일한다(고용허가제 개편방안 발표) https://www.moel.go.kr/news/enews/report/enewsView.do?news_seq=14465)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체류기간이 늘어났으면 당연히 가족과 함께 살 ‘가족결합권’ 역시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울러 기존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사업장 변경권’ 역시 개선되지 않았다. 한겨레 신문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073676.html?_ga=2.54499885.44145291.1678003445-1289688837.1652700714)

물론 정부는 사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따른 사업장 변경은 횟수 제한이 없다고 반박 자료를 내기는 했지만, 사업주의 부당행위를 이주노동자가 증명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결국 이번 개편도 사업주의 입맛에 맞게 더 많은 노동자를 더 싸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반영된 개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https://www.moel.go.kr/news/enews/explain/enewsView.do?news_seq=14472)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인력’이 되어 우리 사회의 노동력 빈칸을 메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 보따리 안에는 삶도 있고, 꿈도 있고,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밥상도 건강하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깻잎 투쟁기⌟, 우춘희 저, 교양인, 2022. p15


    우춘희 작가의 말대로 사람이 온다는 것은 단순히 노동력이 짠하고 오는 것이 아니다. 노동력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사람을 데려온다면 그 사람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적당히 노동력만 제공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딘가 불공평하지 않는가? 우리가 필요해서 부른 사람들이면 그들을 우리 사회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게 공평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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