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에서 오상식 과장이 회사 생활을 힘들어 하는 장그래에게 “버텨라, 그것이 이기는 것이야. 우리는 아직 다 미생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도 수 없이 많은 장그래가 그렇게 버텨내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직장 생활은 버텨야 하는 삶이었다. 언제 좌초될지 모르는 풍랑 속 작은 배처럼 버티지 못하면 결국 무너지고 말 것만 같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위태로운 생활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유일한 희망은 글쓰기이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꿈. 그 꿈을 향한 작은 몸짓이 블로그에 서평을 쓰는 일이었다. 남들은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 묻지만 서평 글이라도 쓰는 일은 깜깜한 동굴에서 저 멀리 새어 들어오는 작은 불빛처럼 내 삶엔 작고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몇 년간 써도 작가가 되기는커녕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고, 그 좋아하는 일은 결국 글쓰기였다. 출근 하지 않고 업무 스트레스도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었다. 어떤 이들은 과감하게 퇴사를 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창업을 해서 성공하기도 하고, 자영업자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런 여러 형태의 ‘직장 탈출’ 모델 중에 퇴사하고 글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만 했다. 한심했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반복되는 똑같은 업무는 날 지치게 만들었고 새로울 것도 없는 직장 생활은 나의 활력을 빼앗아 갔다. 글을 써보려 해도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평범하고 재미없는 일들로 가득 찬 내 삶, 남들보다 나을 것 없는 내 삶을 남들에게 드러내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매일 일에 쫓겨 살아가는 내가 언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이렇게 단조로운 직장생활에 지쳐가며 글쓰기라는 꿈에서도 멀어져만 가던 중 내 인생을 바꿔줄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스테르담’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의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라는 책인데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입니다"라는 표지 문구가 와닿았다. 이 책이 글쓰기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 주었으며, 평생 글쓰기가 꿈이라고 말만 할 것 같던 나를 당당히 ‘작가’로 변신시켜주었다.
저자는 직장인이다. "평범한 직장인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해 내고 있다."라는 저자 소개 글이 눈에 띄었다. 나도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저자는 글을 쓰는 작가이고, 나는 글을 쓰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같은 직장인인데 한 사람은 작가이고, 나는 작가를 꿈꾼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나는 왜 여태 직장을 핑계로만 삼고 있었는지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를 읽으니 막연하기만 했던 글쓰기도 내 것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이미 내가 작가가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내가 왜 글쓰기에 다가서지 못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의외로 간단했던 글쓰기에 대한 다섯 개의 답이 이 책에 들어 있었다.
그 중 첫째는 ‘왜 쓸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왜 써야 하는가는 글쓰기에 앞선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다.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이 책 프롤로그에서 찾았다.
“그저 남이 올린 일상의 파편들을 시기와 질투로 바라보는 삶의 반복. 이런 삶을 살던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이렇게 소비적으로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도 무언가를 생산해 보자'라는 생각.” -프롤로그 5P-
남들이 블로그에 글을 왜 쓰냐고 할 때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그 답을 이 책의 작가가 구체적인 언어로 이렇게 표현해 주었다. 돌이켜 보니 그 이유는 남이 만든 걸 소비할 시간에 내가 생산해 내자는 생각을 나도 했기 때문이었다. 내 소중한 시간에 남들이 올린 일상생활을 소비만 한다는 건 나를 더욱 못 견디게 만들었던 것이다. 왜 쓰냐고?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살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언제 써?”에 대한 답이다. 매일 주어지는 출퇴근 시간은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시간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 시 각 1시간씩 걸리는 사람이라면 하루 2시간은 확보하는 셈이다. 조금 일찍 출근해서 회사 근처 카페에 잠시 앉아서 쓰는 방법도 있고, 점심시간에 잠깐, 밤에 잠들기 전에 잠깐 쓰는 방법도 있다. 이 책 저자의 말처럼 직장인이라서 못 쓰는 게아니라 직장인이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은 활용하기 나름이지 않은가. 이 평범한 진리를 왜 실천하지 못하고 살았던 걸까.
작가가 되고 싶긴 했지만, 내가 만약 글을 쓴다면 뭘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 쓸게 없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인용하는데 이 말이야말로 글을 쓸 소재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희망을 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 내 이야기가 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가장 창의적인 글로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희망이 좀 생긴다.
저자는 글이 되지 않을 삶은 없다고 강조한다. 내 삶이 의미 없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그 일상조차도 글을 쓰다 보면 새롭게 보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 반복 속에서도 쓸 거리가 생기니까 쓰다 보면 글이 될 나에겐 똑같아 보이는 일상도 다른 사람이 보면 흥미롭고 생생하니, 그걸 쓰면 된다는 말이다. 글이 되지 않을 삶은 없으므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이 나에게 알려준 세 번째 답이다.
네 번째는 “어떻게 시작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글을 쓰려고 하면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이 알려 준 그 질문에 대한 답, ”모든 글은 한 줄로 시작한다."라는 말은 수없이 많은 글이 탄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작가들이 한 작품의 첫 문장을 놓고 엄청나게 고민을 한다고 한다. 단어 하나 선택에서부터, 배열 순서에까지 그 하나의 선택이 작품 전체의 무게감과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모든 글은 한 줄로 시작하니까 한 줄을 쓰지 않으면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반면에 한 줄을 쓰면 글을 쓸 수 있다. 시작이 반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 줄 써 놓으면 한 작품의 반은 쓴 게 아닐까?
마지막 다섯 번째로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입니다.”라는 말이다. 나는 작가가 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농부가 되려면 논이나 밭에 작물을 심어야 한다. 좋은 열매나 곡식을 생산해야 농부가 아니라 작물을 심고 가꾸는 게 농부인 것처럼, 작가여서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순간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일단 내가 작가라고 생각하고 한 줄을 쓰고 또 쓰면, 작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다섯 개의 답은 나에게 ‘작가’가 꿈에서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내가 이미 작가임을 깨우쳐 주었다. 오랫동안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작가가 이미 나였다. 쓰는 한 나는 작가일 것이다.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는 이렇게 나의 인생을 바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