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유리지갑을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의 근로자들이 연말정산을 한다. 13월의 보너스라고도 부르지만 결국 내가 낸 세금 범위 내에서 겁나게 쓰면 찔금 돌려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보너스라고 이름 붙이는 건 왠지 조삼모사 같은 느낌이 들어서 탐탁지 않다. 탐탁하진 않지만 연말정산 서류 작성할 때마다 놀랍도록 정교한 세금 징수 시스템에 감탄하곤 한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경우의 수가 담긴 내역을 어떻게 그리 빨리 정리하고 계산하는 걸까.
아무튼 근로자들은 지난 한 해도 열심히 일했고 충실하게 세금을 냈다. 걷어갈 땐 원천 징수라는 이름으로 내 손을 거치기도 전에 아주 신속하고 간단하게 걷어가는데 돌려줄 땐 좀 복잡하게 서류를 작성하라고 하니 좀 열받긴 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돌려받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내역을 입력했다.
이제 어지간한 사업장은 세금 신고를 정확히 해서 근로자나 사업자나 성실 납세를 하고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그런데 가끔 뉴스에서 국세청 직원들이 상습, 고액 체납자 집을 급습하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옷장과 침대 밑 여기저기에서 현금 다발이나 귀중품이 나오는데도 그들은 적반하장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기도 한다.
근로자들이나 성실 납세 사업자들이 유리 지갑을 들고 다니며 피할 수 없는 납세를 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상습 체납자들의 행태는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법에 따라 납부해야 할 세금을 불법적으로 회피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 체납자들을 방관한다면 일반 시민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세금 납부에 대하여도 저항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고액 상습체납자들은 끝까지 추적해서 세금 추징하고 처벌하자!
그들을 생각하니 지금 지난 한 해를 정산하는 연말 정산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근로자들 모두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세금 조금만 덜 내면 좋겠다. 체납자 없도록 보다 더 철저히 징수하고 정부가 살림할 때 세금이 허투루 새지 않도록 한다면 일반 시민들 세금은 조금이라도 덜 걷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