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혼란스러워 Feb 10. 2023

나에게 주어진 시간

영화 인 타임을 보고 

“팀장님!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

“제 채널 누적 시청 시간이 드디어 4,000시간을 돌파했어요.”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요. 몸을 갈아 넣어야 해요.”


몇 달 전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고 한 후배의 말이다. 유튜브, 그건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말재주도 좋아야 하고, 얼굴을 다 노출해야 하고 어떤 악플도 감수하는 깡도 있어야 하고, 콘텐츠도 좋아야 하며 영상 편집도 잘 해야 하는 나 같은 ‘일반인들’(일반인들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않은 체 아주 일반적으로 표현해서)은 엄두도 못 낼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너도나도 다한다.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차이는 없는 것 같다. 후배의 얘기를 듣고 나서 문득 나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나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영역으로 여겼는데 그 후배를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영상을 올렸느냐 올리지 않았느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유튜버와 일반인 간에 다른 차이는 없다는 어느 자기 계발서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출연해서 할 자신은 없고 키우고 있는 열대어를 소재로 하여 영상을 찍어서 올렸다. 그렇게 영상 몇 개를 올리니 금방 부자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찬바람 휑하니 부는 벌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 조금 올라가다가 멈춘 조회 수는 꿈쩍도 하지 않고 같은 숫자를 유지했다.


유튜브에서 수익을 창출하려면 최근 365일간 전체 영상 시청 시간이 4,000시간을 초과해야 하는데 4,000시간은커녕 400시간 달성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하긴 사람들이 내가 올린 허접한 영상에 시간을 소비할 것 같지 않았다. 나도 유튜브를 켜면 볼만한 영상을 신중하게 골라서 보고 클릭했다가도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나와 버린다. 안 그러면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4,000시간.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의 시간 4,000시간을 뺏어야 한다. 그렇다. 요즘 세상은 사람들이 인터넷 콘텐츠에 시간을 소비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판 사람은 돈을 번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모든 SNS나 인터넷 매체가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올린 콘텐츠는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빨아들인다.


“살고 싶다면, 시간을 훔쳐라!!” 2011년 개봉한 영화 <인 타임>은 시간을 돈처럼 거래하는 세상을 소재로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25살이 되면 성장과 노화가 멈추고 팔에 새겨진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1년을 다 쓰면 죽는다. 더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커피 1잔 4분, 버스 요금 2시간, 스포츠카 1 대 59년, 모든 비용은 돈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된다. 결국 시간을 독점한 세력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내용이다. 시간을 많이 가진 자는 부유해서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고, 시간이 없는 사람은 하루 노동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간이 급하게 필요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돈을 빌릴 때와 같이 이자를 내야 한다.


영화에서 시간은 소수 집단이 독점하고 대부분은 빈민가에서 노동으로 연명한다. 주인공 월 살라스(저스틴 팀버레이크)도 빈민가에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이다. 현실 세계의 노동자들처럼 매일매일 시간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가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헨리 해밀턴(맷 보머)으로부터 세상엔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시간을 독점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노동만 하다가 죽어야 하는 시스템의 비밀을 들은 것이다.


시간을 독점한 세력을 보며 거대한 인터넷 플랫폼 회사가 떠올랐다. 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물리적인 데이터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속 데이터까지 모은다. 내가 잠들기 전에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켜고 SNS를 보고 좋아요, 공감을 누르는데 소비한 시간과 누름으로써 드러난 나의 취향은 고스란히 그들의 서버에 저장되었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이고 모든 인간은 그런 하루하루를 살다가 언젠가는 죽는다. 돈은 불평등해도 시간은 평등하게 주어졌다. 하지만 이젠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영화처럼, 우리가 바친 시간과 데이터로 부를 거머쥔 거대한 회사들은 머지않아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노화가 멈추고 영원히 살 수 있을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돈이 아닌 시간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영화의 설정은 당혹스럽다. 모든 사람이 충분히 나눠가질 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도 왜 소수의 사람들만 시간을 독점하고 나머지는 시간이 없어서 죽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에선 주인공이 시간을 훔쳐 빈민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행위를 막기 위해 그를 사살하려고 한다. 시간이 분배되면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이유에서다. 유례없을 풍요로움을 누리는 지금에도 지구 어느 한편에선 굶어 죽는 아이들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영화가 암울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을 빼앗겼다는 사실보다,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자유를 빼앗기고 통제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돈에 대한 열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비슷하게 못 살던 사회에서 점점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격차가 커지는 사회가 되면서 이러한 열망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mage by Jan Vašek from Pixabay


사람들은 돈이 많아야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돈이 없으면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지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경제적 자유’,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적 자유를 외친다. 종속되고 싶지 않은 요즘 세대의 특징과 부의 편중에 따른 불평등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경제적 자유는 거의 종교적 외침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거대 플랫폼 회사에 시간을 빼앗기고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 데이터가 모여 알고리즘이 되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에 통제된다. 주체적 사고와 선택은 없다. 보여주는 대로 보고, 보여주는 한도에서 선택을 한다. 영화에서 보여준, 모두에게 나눠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존재함에도 소수가 시간을 독점하는 구조가 현실에서도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1748년 <젊은 상인에게 보내는 조언>이라는 글에서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했다. 시간을 경제적 관점으로 생각해서 이야기한 사람은 프랭클린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으며 투자한 시간 대비 얻는 이득은 거의 1:1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시간을 들여 만든 콘텐츠의 자산 가치는 무한하다. 영화 <인 타임>은 시간이 돈이 되는 세상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 게 아닐까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헤아려 보지만 의미가 없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삶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영화에서처럼 늙지 않고 무한정 사는 시간 부자들이 행복할지는 의문이다.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소중하게 소비하며 살아야겠다. <인 타임>은 자칫 인터넷 플랫폼에 의해 시간을 빼앗기고 결과적으로는 통제당하기 쉬운 삶에 일종의 저항감 같은 자유의지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작가의 이전글 연말정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