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2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은 '부부는 싸움을 하여도 화합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하지만 나는 그다지 동의하고 싶지 않다.
'부부 싸움은 칼로 서로의 심장에 생채기 내기'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나는 이 생채기를 며칠 전 심하게 냈다. 그리고 느꼈다. 감정의 골이 깊었을 때 싸우면 위험하다는 것을......
그동안 남편의 못마땅한 행동들에 대해서 나 스스로는 쿨하게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흘려보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서운함 감정이 차곡차곡 고여 있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쌓인 감정이 주말과 휴일을 온통 본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터졌다. 평일 주 5일은 술 먹고 늦게 귀가, 주말에는 본인의 약속을 위해서 외출! 그나마 쉬는 날은 침대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기!
나의 '화'의 지점은 나에게 소홀한 건 괜찮은데 아이들한테까지도 소홀해하는 모습이었다. 중1 딸아이는 아빠가 집에 없는 게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아빠가 집에 있으면 불편하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아빠랑 보드게임도 하고 힘겨루기도 하면서 놀고 싶은데 막상 놀고 싶을 때는 아빠가 없어서 못 논다고......
부부 싸움하기 직전 남편은 공휴일 연휴에 1박 2일로 지인들과 놀러 갔다. 외출을 서두르는 남편을 보면서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차분히 말을 했다.
"왜 항상 당일날 통보식으로 말을 해! 정말 서운해. 아들이랑 좀 놀아주면 안 돼~ 갈 거면 당일치기로도 갔다 와! 멀지도 않은 거리니까 가능하잖아"라고 했더니 남편은 "이미 약속을 해서 그러기가 힘들어"라는 대답을 하고 나가버렸다. 내가 남편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은 "알았어, 미안해! 당일로 갔다 올게"였는데......
남편이 1박 2일로 놀고 있을 동안 나는 밤새 고민을 하면서 더 이상은 이 사람과의 결혼 유지가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얼굴도 보기 싫었고 말도 하기 싫었고 목소리도 듣기 싫었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서운함과 날이 선 내용이 가득 담긴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남편이 집으로 오는 날 나는 집을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어디 멀리 가서 며칠 집에 안 들어오고 싶었지만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었기에 마음 정리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나는 남편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내 카톡에 대한 답을 기다렸다. 남편은 나보다 더 긴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내가 쏟아놓은 서운함의 몇 배로 심지어는 내가 10년 전에 한 말 때문에 그 말대로 행동했을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10년 전에 내가 한 말! 육아로 피곤하고 지쳐있었을 때 내가 한 말! 게다가 그 말은 5년 전에 한말인데
기억난다. 평소에 애정과 인정 욕구가 강했던 남편, 나에게 항상 본인은 안 봐주면서 아이들만 챙긴다고 연애할 때와는 달리 너무 많이 변했다면서 서운해하던 남편, 주말마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던 남편, 그러면서 집안일이라고는 주말 한 끼 식사 만들어 주는 걸로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던 남편! 이런 남편에게 말했었다.
"나는 매일이 피곤해, 주말에만 이라도 온전히 쉬고 싶다고, 당신 집에 있는 게 심심하고 지루하면 당신만의 건강한 취미를 가져! 예전처럼 사회인 야구를 하던지 다른 모임을 하던지 맘대로 해"라고 했던 말......
남편은 '맘대로 해'라는 이 말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면서 무슨 면제부라도 받은 것처럼 곱씹으면서 그동안 당당하게 행동을 해왔던 것이다. 정말 마음대로!
더 이상은 카톡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성을 높일 생각은 없었는데 남편은 내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계속 본인 서운한 것만 얘기해서 나도 모르는 새 목소리는 커져가면서 담장을 넘고 있었다. 억울하고 화도 나고 서럽고 눈물도 나면서 점점 이성을 잃고 성난 불 뿜는 용이 되어갔다. 정말로 남편을 불태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이번이 서로 얘기할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악을 쓰면서 그동안 서러웠던 것들을 다 쏟아부었다. 우리 부부의 싸움은 '누가 누가 더 상처를 잘 주나' 내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남편이 전화를 받고 나감으로써 부부싸움은 잠시 휴전이 되었다. 그 순간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 앞에서 만큼은 싸우지 말자고 했던 여태껏 잘 지켜왔던 다짐이 와르르 무너진 순간이었다. 걱정이 되어서 들여다보니 딸아이는 자고 있었고 아들은 게임기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랑 아빠가 평소 속마음을 터놓으면서 얘기를 해야 했는데 그게 잘 안된 것 같아. 그리고 서로에게 바라는 크기가 너무 다르고 생각의 차이도 커서 다투게 되었어. 많이 놀랐지"?라고...... 아들이 대답했다.
"응 좀 무섭고 두려웠어"
"엄마 아빠가 싸울 수도 있지만 서로 따로 떨어져 살게 되는 건 싫어"
"엄마랑 아빠가 서로 바라는 크기를 조금씩 양보하면서 그 크기를 맞추면 되잖아"
"그래서 앞으로는 더 화목하게 살고 싶어"
"그리고 그동안 엄마가 아빠를 대해는 행동이나 말투가 아빠를 너무 싫어하는 티가 나서 아빠도 상처 많이 받았을 거야, 엄마가 앞으로는 조금 더 아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면 좋겠어"라고......
울먹울먹 하면서 말하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들과 나눈 긴 대화 속에서 그리고 아들의 눈물 속에서 놓아버렸던 나의 이성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되짚어보았다.
남편이 자기 멋대로 행동할수록 나 또한 말속에 뾰족한 가시를 담아서 '너도 당해봐라' 하는 식으로 남편을 대해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상대방이 바라는 거, 좋아하는 것을 들여다봐주면서 다독여주기보다는 '네가 잘하면 나도 잘할게'라는 똥고집으로 대립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흘 정도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다시 잘 지내보자! 노력해보자'! 였다. 아이들한테 만큼은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
아이들이 다 잠든 새벽에 남편과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그리고 미안한 부분에 대해서도 말을 했다. 남편도 진심으로 미안해하면서 그동안의 행동들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서로 오기로 이겨보려고 했던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노력할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 서운한 게 있을 때는 바로 말하기
- 약속을 잡을 때는 미리 의논 하기
- 말투와 행동은 부드럽게
- 부부만의 시간 갖기
- 최대한 저녁 식사는 다 같이 먹기
-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기
이번 부부 싸움을 통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인정하는 건 쉽지 않지만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하구나'였다.
부부 싸움이 가져다주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상처투성이로 헤어지기 아니면 현명하게 회복하기'
지금 나는 심장에 새겨진 생채기를 치유하면서 현명하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참, 딸아이가 나에게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본다.
"엄마~ 아빠랑 싸울 때 목소리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처음 들어본 목소리라서 깜짝 놀랐어"라고
딸아이가 말했다. 나도 대답했다.
"맞아 엄마 꼭 성난 불 뿜는 용 같았어! 앞으로 엄마, 아빠 많이 노력하기로 했으니까 다시는 그 목소리 못 들을 거야"라고...... 딸아이의 미소가 나를 웃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