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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양댁 Feb 08. 2024

지독하고 처절했던, 산후 우울증(2)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결국 증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집 근처 정신의학과를

찾게 되었고,

벗의 육아휴직으로

'공동육아'를 시작하게 된다.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출퇴근을 하는 벗은

 '나'와 아기를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

 (집안일, 새벽 수유,

 아기 목욕 등등)




벗의 노력을 보며

최대한 나도

이 악물고 버티고

극복하려 안간힘을 썼다.





문득 갑갑증이 밀려올 때면

 아기를 유모차에 후다닥 태워

밖으로 나갔고.


잡생각이 들 때면

무작정 집안일을 하며

 정신을 다른 데로

 분산시키려 했으며.


 중간중간

아기가 잘 때면

 최대한같이

 잠들려 노력했다.






하지만, 참 쉽지 않았다.

한 겨울에

 아직 100일 전인 아기를

 매번 데리고 나갈 수 없었고

 불면증이 이미 있어서

 아기가 잘 때

매번 같이 잠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기가 낮잠, 밤잠까지

토끼잠을 자서

 더 힘들었던 때...)



밥은 뭐...

차리는 것도

귀찮아서 굶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벗이 출근 준비 시

사용하는 드라이기 소리만

듣고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았다.



 '아... 오늘은

혼자 어떻게 버티지?'


'도망가고 싶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었고.


벗이 출근하자마자

집에 있는 커튼이란 커튼은

다 열어젖히며

아이 낮잠 타임을 틈타

한 겨울임에도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저 하루 종일

아이와 시계만

번갈아 보기 일쑤였다.


 벗이 퇴근하는 시간만

기다리며 하루를 버티는

 '나' 자신이 한심해졌고

'엄마'로서의 자격에 대해

스스로 물을 때가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런 증세가 계속되다 보니

벗도 슬슬 걱정과

인내심의 한계가

오기 시작했을까.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

벗이 먼저 조심스레

정신의학과 방문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정신의학과 방문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친정에 있을 때

 주변 병원 검색도 해보았고

 출산 후 한 달 진료로 인해

 산부인과에 갔을 때

주치의한테도

정신의학과 방문을

 적극 추천을 받았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산후 우울증도 질병 중

하나이기에 병원 가는 것을

추천하셨다.)




하지만,

다른 진료과와 달리

정신의학과에 대한

 괜한 두려움 때문에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머뭇거림이 꽤 있었다.






그러다 결심을 하게 된 건

 아무래도 '아기'때문이었다.

점점 심해지는 증상이

언젠가는 아기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것을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방문했던 집 주변)

정신의학과는

 별게 없었다.


비싼 진료비에 비해

 온라인 심리(?) 테스트 같은 거

 2개 정도 하고,


 '산후 우울증'진단만 내리고

약 처방만 대충

빠르게 해주려고 하였다.

(주변 지인분이 방문한 곳은

정말 좋았다고 하는데..

병바병인듯)



개인적으로는

 상담 위주로 진료를

봐줬으면 싶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상담 위주로 받고 싶으면

차라리 상담 심리센터를

찾아가라고 쓰여있었다.



 약은 3일 치 처방을 받아와서

 밤잠은 수월하게 잤지만

다른 약들이 낮에 좀

 나른하게 만드는 게 있어서

 3일 치만 처방받고

그 이후에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저 병원 방문을

잘했다는 것 중 하나는

 진단이 확실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계속 '우울증인가?'

온갖 추측만 해대다

온라인 정보만 휘적휘적거리고는

 '에잇 설마...'라는 결론으로

창을 끄고는 했다.


적극적인 극복 방법을

생각지도 아니한 채.







진단을 받고 나온 날은

 야속하게도 오전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엄마한테

 아기를 잠깐 맡기고

 나온 터였지만

 쉽사리 발길이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병원 옆 스타벅스로 들어갔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 후

한동안 바깥을 보며

멍을 때렸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

의식의 흐름처럼

 휴대폰을 들어

 벗한테 전화를 했다.



그때 시각

 평일 오후 2시 즈음.

벗이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나른하게

 오후 업무를 보는 시점이었다.




나: 통화 가능해? 병원 다녀왔고 결과 들었어.


벗: 결과 나왔구나. 뭐래?


나: 산후우울증이 맞...다고..흐엉..ㅠㅠㅠ




휴대폰 너머로

벗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부터 참았던 눈물이

 '산후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옆 테이블 남자가

 '전화기 붙잡고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이 여자는 무엇인가'라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까.

벗은 묵묵히 들어줬고

나도 모르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나: 오빠, 정말 미안한데...

 육아휴직 써줘.

 제발 빠르게 써줘.

그래야만 할 것 같아.




사실

 저 말은 최후의 보루로.

되도록 꺼내지 말아야지 하고

그동안 버텨오던 말이었다.


 벗의 회사 분위기상

남자가 육휴를 쓰는 것도

 전무후무했고

다른 엄마들 혼자 꿋꿋이

 다 해내는 일을

 '나'만 못해내는 거 같았고.


무엇보다 회사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벗의 입장.


벗을 난처하게 만드는 거

같아서 정말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벗에게 참 고마운 부분인데.


벗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알았어. 말할게.

있다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라는

단 세 마디만 남긴 채

1주일 만에 3개월 육아휴직을 바로 써버렸다.

(사실 6개월 이야기를 했는데

 3개월로 컷 당했다.

이후 호전 안 되면 연장하기로)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팀장 포함 팀원 모두가

 나의 '산후 우울증' 진단에 대해

 생각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줬다고 한다.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이런 중대한 사유가 있어야만

남자가 눈치 안 보고

육휴를 쓸 수 있구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작년 11월 마지막 주부터

벗이 육휴를 썼으니

 '공동육아'를 한지

이제 막 2개월이

다 되어간다.




다행히

현재 상태는

글로 끄적거릴 정도로

정말 많이 좋아졌다.



 '공동육아' 덕에

필라테스도 끊고,

운전 연수도 받으며

'나'를 위한 시간을

 짬 내서 종종 갖으려 하고 있다.  





간혹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포인트가

생기긴 하는데

벗의 토닥임으로

 잘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당장 100% 완치는

될 수 없다 생각하고...


울컥하는 마음을

 다지고 또 다져서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앞으로 수없이

반복해야 할 듯하다.






 [아기에 대한 죄책감]으로

적극적으로

우울감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엄마들을 위로하며

이번 글을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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