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양댁 Feb 07. 2024

지독하고 처절했던, 산후 우울증(1)



'지독하다 못해 처절했고,

지금도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며

하루하루 적응해가려 한다.

 아니, (아기를 위해) 적응해야만 한다.'



작년 8월 출산 후 겪은

 '산후 우울증'에 대한

 '나'의 소회라고 할까.


생각보다

 '산후 우울증'

 꽤 세게 왔었다.


우울증에 관련해서

첫 문장을 쓰기 전까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 필요했고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매일매일 훔치는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산후 우울증'을 제일 처음 마주했을 때

애써 그 감정을 외면하려고만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기를 앞에 두고

감히 그런 감정과 생각을 하는 게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증상은 심해져 갔고

힘겹게 입 밖으로 하나씩 꺼내 들었을 때

오히려 주변 가족들이 아이를 앞에 두고

그러는 것을 쉬-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제일 가까운 가족의 이해를

얻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후 우울증'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당신만이 겪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겪는 강도 또는 기간의 차이지

 '엄마'가 된 누구나 겪는 것이라는 것을.






네이버, 유튜브 등

육아 일상을 담은

글 및 영상에는

 '산후 우울증'이란 단어를

애초에 적극적으로(?)

찾아볼 수 없었다.


찾았다 하더라도

애써 현실 부정을 하며

 밝게 표현하거나

 '이미 다 극복했습니다!'

대부분이었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고,

극복한 과정의 처절한 몸부림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온라인상에는

전문가들의 뻔한 말들 뿐이거나

분명 '산후 우울증'관련 포스팅임에도

겉핥기식의 극복 방법뿐.



그들이 겪었던 감정, 생각, 원인, 과정 등의

 상세한 내용을 읽고 싶었던

 '나'로서는 아쉬움뿐이었다.







이해는 되었다.

 '산후 우울증'을 겪는 내내

 [아기에 대한 죄책감]

함께 동반되었다.



모든 우울증을 겪는 분들이

다 그러하겠지마는

 '산후 우울증'은 아이랑

연관을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는 자체부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천국이라고 표현되는

 2주간의 조리원 생활부터가

 문제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조리원이

천국이 아닌 지옥이었다.



2주 동안

최소한의 사람들과 접촉으로

 한 공간에 갇혀

생활한다는 게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지...

(코로나 이전에는

외출도 자유롭게 허해줬다고 하는데

 이후에는 외출 부분에 대해서

 엄격해졌다 함.)






집 밖으로 나다니길 좋아하고

 운동을 즐겨했던 1인이었기에

 더 고통스러웠을까.



벗이 같이 있어줬던

 3일을 제외하고는

 남은 시간은 젖소처럼

유축하기 바빴고

우울감에 밥도 3 숟갈 정도만 먹으며

갑갑증에 창문을 열어 놓아야만

 잠에 들 수 있었다.







미련했다.

상태가 악화될수록

도중에라도 퇴소를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매일 2회 있는 모자 동실을 겪으며

으레 '엄마'가 되는 과정이겠거니.

2주간의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온전히 견뎌냈다.






조리원 퇴소 날 아침,

아니 새벽부터

집에 간다는 생각에

 전날 밤에 벌써 다 싼 짐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외출복으로의 환복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했다.



조리원을 나서는 순간

다시는 이곳 근처라도

얼씬거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차에 올라탔다.


원래 살던 신혼집은

 좁디좁아 신생아 케어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엄마의 설득에 추가로

2개월간 친정 엄마 댁

찬스를 쓰기로 한다.






친정 찬스 또는 산후 도우미도 안 쓰고

신생아 육아부터 잘 헤쳐나가는

엄마들도 있다는 생각에

 친정엄마 덕을 보는 '나'는

 그 누구보다 더 잘 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조리원 때부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산후 우울증'

하루하루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고

 다음과 같은 증상을 겪었다.






+ 입맛이 완전 뚝 떨어졌다.

+ 불면증이 심해졌다.

+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 혼자 있을 때면

그 우울감이 더 심해졌다.

+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했다.

+ 아기 울음소리가 무서워졌다.






조리원 때부터 떨어진 입맛은

 매 끼니 온갖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엄마 식탁에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출산 후 기력 회복이 전혀 되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방에서 같이 자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새벽마다 공포로 다가왔다.



아마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을

 새벽 내내 우는 아기 때문에

채우지 못하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밤이 오는 게 점점 무서워졌다.

 (나중에는 아기가 있는

침실에 들어가기 무서워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한 적도 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매일마다 아기를 봐줄 테니

 등 떠밀며

혼자 나가 시간을

 보내다 오라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못 이기는 척하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밖으로 나갔지만(도망쳤지만)


 갈 곳도 딱히 없었고

 현실로 다시

곧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감만 커져

 1시간 내로 돌아오고는 했다.






집에 돌아오면

 아직 '엄마'라는 것을

인지는 못하지만

본인을 케어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지...


'나'를 보며

그저 해맑게 배냇짓을 하는

아기가 누워있었다.



그 순간 도대체

밖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돌아다니다 온 건지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고

 엄마랑 아기가 볼까 방에 뛰어 들어가

 흐느껴 울고는 했다.






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지킬앤하이드였다.


웃을 기분이 전혀 아닌데

 아이랑 눈이 마주치면

 혹여 이 기분이 전달될까 싶어

 힘겹게 웃어 보이며

하이톤으로 말을 걸어주곤 했는데.



그러다 도저히 못 참겠을 때는

아이가 못 보게 꼭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이 장면을 몇 번 본 엄마는

그럴 때마다 아이를 품에서

 뺏어가시곤 했다.)








그렇게 반복된

 우울한 생활 속에

어느덧 친정에 있기로 한

 2개월이 끝났고.


집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혼자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시점이 오게 되었다.



"네 살림이 아니고

환경이 바뀌어서

네가 더 그랬을 거야.


너네 집으로 돌아가면

안정되고 많이 나아질 거야."



여전히 걱정 어린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며

애써 긍정적인 워딩으로

 딸을 보낼 준비를 하는

엄마의 노력이

 저 한마디에서 느껴졌다.





'그러겠지. 그럴 거야.

그래야만 해.'



엄마의 말을 듣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기 손을 꼭 붙잡고

 이 말을 계속 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진짜' 집으로

아기와 함께 돌아오게 되었고

60일 차 아기와 함께

본격적인 독립(?)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아지지 않은

산후 우울증님도 함께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출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