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양댁 Feb 06. 2024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출산



40주 3일

23년 8월 25일 

오전 8시 정각. 

3.55kg / 남아 탄생






39주 5일 차에 

병원 방문을 했을 때도 

나올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던 

우리 아기. 



주치의 선생님은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하셨다.



40주가 넘어갔을 시점부터는 

아이가 태변을 먹을 수 있어

 1~2주 안에는 낳아야 한다며

 자연분만을 원하면 

유도 분만 날짜를 

잡자고 하셨다.



살면서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단순히 

제왕절개보다는 

당연히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8월 25일 자정. 

그날 밤은 유독 달랐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평소에도 활발하던 태동이

 그날 밤에는 활발하다 못해

 '오늘 내가 꼭 나가고 말텨?'의 느낌으로

 발로 뻥뻥 차는 게 아닌가. 

(하루종일 짐볼 운동을 시작으로

유튜브 임산부 홈트를 따라 한 

보람이 있었나)






낮에 하루 종일 자서

 잠도 안 오겠다... 


약 한 시간 동안 

그 무지막지한 발길질에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순간 조용해지는 것이 아닌가.



 '아... 오늘은 아닌가...' 하던 순간에 

적막을 깨는 소리. 



"뽁!!!!!!"




온라인 카페의 문지방이 닳도록 

출산 관련 정보를 서칭 했던 데이터가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저 소리를 듣자마자 

귓가에 울리는 

그녀들의 한마디. 



'양수가 터지면 

뽁! 하고 소리가 나요!'



이거다! 싶어

후다닥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서

 팬티를 확인하였고. 


아니나 다를까 

물 같은 것과 

피가 함께 

묻어 나왔다. 






쿨쿨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벗을

 흔들어 깨워서 

새벽 3시경에 

분만실로 향했고. 


그렇게 약 5시간 만에

 자연분만으로 

순산을 하게 된다.

(초산에 5시간이면 

완전 순산이라고 한다)







출산 후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어땠어? 아팠어?' 

이 말이었던 거 같은데.

분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를) 그냥 막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딱 이거였다.






일단, 

양수가 터진 채로 온 산모였기에

 분만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조심히 다뤄주실 줄... 아는 것은 개뿔.



갑자기 

아래에 팔을 쑤욱- 넣으시더니

 미친 듯이 휘저으시는 게 아니신가.



 낯선 분만실에 누워서

 낯선 사람의 휘저음을 느끼는데 

순간 매우 당황했다.  






내진을 통해 

양수를 제대로 터뜨려서 

진행을 빠르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는 하는데. 


그 뒤로 계속된 

휘저음(?)에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이 더 이상 

내 몸이 아니구나 싶은 느낌.






그 이후에는


무통을 맞은 후

 힘주기 연습을 할 때 

소변을 미처 다 비우지 못해서

 간호사 선생님께 

실례를 하기도 하고,



본격적인 분만에 들어갔을 때는

 힘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간호사 선생님 3분이 달려들어

 배를 미친 듯이 누르셨는데. 


아파할 때마다

 시간을 끌수록 

아기가 위험하다는 말을

계속하셔서

 그 고통도 그냥 온전히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아기를 위해서는 

일단 내 몸과 멘털은

 잠시 모두 내려놓아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임신했을 동안에는

 출산의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눈이 절로 갔기에.



출산 과정 자체가

몸과 멘털적으로 

이리도 힘든지는

 꿈에도 몰랐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놀이터에 뛰어다니는 

아이 한 명을 낳고 키우기 위해서

 '엄마'라는 존재는 

얼마나 많은 인내와 희생을 

감내해야 했는지.


.

.

.


출산 후, 

세상이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휴직이라 쓰고 경단녀라 읽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