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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ug 04. 2023

털뭉치 냥이의 여름 나기

우리 집 냥이 크림이와 맞는 세 번째 여름이다. 녀석을 보고 있자면 '이제 진짜 여름이구나' 실감하는 포인트가 있다. 첫해는 초보 엄마가 그렇듯 초보 집사였던 나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는 직장 다니느라 낮 시간엔 집에 없었으니 유심히 살피지 못한 탓도 있을 테지.


두 번째 여름부터는 확실한 신호가 있다. 우리 집에 여름이 오는 풍경.

바삭바삭한 열기가 거실로 들이닥치기 시작하면 크림이는 차가운 바닥을 찾아다닌다. 주로 부엌 아일랜드 식탁, 싱크대, 화장대 등 대리석 비스무리한 재질이나 화장실, 현관, 전자레인지장 같이 타일이나 유리로 된 곳에 배를 깔고 눕는다. 서늘한 촉감의 세면대까지 귀신같이 찾아낸다. 쌀쌀해지면 결코 몸을 누이지 않는 장소니 크림이를 보며 여름이 오고 감을 느낀다.


그런 크림이의 모습이 귀엽고 짠하다. 24시간 털옷을 입고 사니 얼마나 더울까 싶어 미용을 해줄까 하다가도 고양이들은 미용할 때 마취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마음을 접었다. 간혹 '고양이 무마취 미용'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가게를 본 적도 있지만, 이전 글에도 썼듯이 발바닥 털만 밀어도 난리 블루스를 치니 굳이 스트레스 줘가며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내키지 않았다. 그러니 별수 없이 더벅머리 고양이로 살아가는 수밖에.


여름이면 어쩔 수 없이 더위에 늘어지는 크림이. 딸아이 어릴때도 추울세라 꼭꼭 싸매주고 더울까 부채질해 가며 온갖 자발적 시중을 들었는데 또다시 내 처지가 그렇다. 털에 쌓여 있는 크림이가,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 말하지 못하는 그 녀석이 애잔하여 누워 있는 곳을 쫓아다니며 선풍기를 틀어준다. 바람에 털오라기들이 부엌이며 어디며 공중으로 퍼져나가도 그러려니. 너만 시원하면 됐지. 날아다니는 털이 별거냐며 눈을 꼭 감는다.(날리는 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헤헤) 그런 집사 마음도 몰라주고 한량 크림이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후 금세 자리를 옮겨버리기도 한다. 그럼 나는 꽁무니를 쫓아가 또 선풍기를 대주고. 무한 반복이다.  


여기가 차갑고 좋다냥


여기도 내가 찾은 시원한 스팟이다냥



딸아이가 방학인 요즘 낮 시간엔 주로 아이 방에만 에어컨을 틀어둔다. 나는 더위를 잘 안 타는 탓에 선풍기로도 그럭저럭 버틸만하고, 아이는 방에서 책 읽고 공부하고 음악 들으며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그리한다. 방마다 에어컨을 켜두기엔 전기세가 겁나기도 하니.


크림이가 알아서 딸 방에 들어가면 지도 시원하고 내 마음도 놓이고 서로 좋겠건만 억지로 데려다 놓으면 청개구리처럼 다시 나오고 또 나오고. 화장실도 가야 하고 물도 마셔야 하니 강제로 아이 방에만 둘 수 없어 방문을 살짝 열어놓기에 내킬 때 들어갔다 금방 나와버리기도 한다.


하나 더위엔 이길 장사가 없는 걸까? 어느새 아이 침대에 벌러덩 누워 배를 까고 숙면을 취하는 크림이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조용해서 방문을 열어보면 크림이도 자고 공부한다던 딸도 자고;; (못살아)


그래도 시원한 방에 둘이 함께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빵빵한 에어컨 아래에서 낮잠 한번 늘어지게 자보는 것도 여름의 맛이지. 털뭉치 크림이의 건강한 여름 나기를 응원하며 사진 한 장 남겨보겠다. 찰칵!


에어컨이 빵빵! 잠이 솔솔 온다냥 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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