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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ug 10. 2023

콩국수가 좋아져서 슬퍼

내 입에서 콩국수가 먹고 싶다는 말이 나올 줄이야. 기가 막혔다. 왜냐하면 나는 콩국수를 싫어하니까.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언제인지 아득하다. 못해도 10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그마저도 먹었다기보다는 같이 식사하던 직원이 맛이나 보라며 덜어 준 콩물을 홀짝홀짝 마셔본 정도다. 그때도 나는 콩국수 전문점에서 비빔밥을 시켰고, 작년 여름 시댁 식구들과 여행 중 들른 콩물 집에서도 나만 만둣국을 시켰더랬다. 한 번도 내 몫으로 콩국수 한 그릇을 시켜 본 적도, 먹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랬다. 내게 콩국수는 몹시 걸쭉하고 살짝 밍밍하고 어쩐지 비린내가 날 것 같은 불호의 음식이었다.  오죽하면 콩국수는 맛있다 맛없다가 아니라 내겐 그냥 무(無) 맛이야라는 말까지 내뱉었을까. 혹시 콩사모(콩국수를 사랑하는 모임)가 있다면 '당장 저 여인을 끌어내라' 할 판. 그렇게 기고만장했던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시원한 콩국수 먹고 싶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곧장 나갈 채비를 했다. 맛집을 검색하고 오픈 시간을 체크한다. 1975년도부터 장사를 해온 지역 맛집이란다. 11시쯤 도착해 여유 있게 자리를 잡았으나 맛집답게 금세 손님들이 밀려와 꽉 들어찼다. 이렇게나 콩국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새삼 끄덕였다.


 콩국수는 노란콩, 검정콩 두 종류가 있었는데 오리지널스러운 노란콩으로 주문했다.

 


얼음 없이, 오이니 뭐니 고명도 없이 딱 면만 담겨있다. 어쩐지 심심한 모양새다. 콩국수는 설탕파와 소금파로 나뉜다는 들은풍월은 있었으나 일단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본연의 맛을 느껴봤다. 한 숟갈, 두 숟갈, 세 숟갈.. 그러다 그릇째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오잉? 이거 뭐지? 너무 꼬숩다.



미숫가루도 아닌 것이 두유도 아닌 것이 시원하게 잘도 넘어간다. 면발은 또 얼마나 쫄깃하고 탱탱하던지.  내가 무(無) 맛이라 표현했던 그 밍밍함이 담백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다음 설탕 한 스푼 넣고 휘~저어 먹으니 고소함에 달달함이 더해진다. 나는 이제 감히 말한다. 콩국수를 좋아하는 여인이라고. 거기다 설탕파라고.(하하하)  




여기서 잠깐! 그럼 콩국수가 좋아져서 슬픈 이유가 대체 무엇이냔 말이냐.


첫째. 평소 남편이 하던 말 때문이다. 어쩌다 TV에서 콩국수 맛집이 소개되어도 전혀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말하는 내게, 본인도 젊었을 때는 콩국수가 무슨 맛인지 몰랐단다. 나이 들면서 그 맛을 알게 됐다고. 그때마다 고작 3살 많은 남편을 큰 어르신 대하듯 놀리며 한껏 까불었다. 난 어려서(?) 잘 모르겠다고. 그런데 이젠 콩물의 슴슴하지만 끌리는 맛을 알아버렸으니 나도 나이 들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괜스레 슬픈 척을 해봤다.


둘째. 내가 선호하는 면 음식은 라면, 칼국수, 우동 종류이고 즐겨 먹지 않는 것은 콩국수 포함 냉면, 냉메밀, 막국수 등이다. 추위를 많이 타고 손발이 차가운 체질이라 아무리 여름이어도 얼음 동동 띄운 차가운 면은 절대 당기지 않는다. 대학시절 한여름. 동아리 부원들과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10여 명 모두 냉면을 시키고 나 혼자만 카레를 주문했을 만큼 찬 음식은 잘 맞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언젠가부터 냉메밀을 시작으로 슬금슬금 콩국수까지 차가운 면을 찾는다는 사실. 요즘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오르며 자주 더워진다. '설마 나 갱년기인가?' 남편에게 물었더니 갱년기가 무슨 불치병이라도 되는 듯 아직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날도 한참 열이 오르고 화끈거리다 안 찾던 콩국수까지 먹게 되었으니 갱년기 전조증상인가 싶어 슬퍼지려 했다.





슬퍼하고 있기엔 그날 맛본 콩국수가 몹시도 취향 저격이었다. 그러니 생각을 바꿔보자. 나이 들어가며 담백한 맛을 더 깊게 음미하게 됐다고. 몸에서 화끈화끈 열기가 느껴지는 것을 갱년기 증상이라 여기지 말고 운동 등 신체활동을 늘리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자고. 고소한 여름 별미 콩국수를 맘껏 먹어보자고.


이제는 더 이상 콩국수가 좋아져서 슬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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