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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Oct 25. 2023

고양이에게 배워야 할 것


인간들은 다 고양이한테 배워야 해



저녁을 먹다 말고 내뱉은 맥락 없는 나의 말에 함께 살고 있는 두 인간의 시선이 쏠렸다. 딸아이는 흥미롭다 생각하는 눈빛이지만 스스로를 우리 집 서열 4위(고양이 다음;)라 생각하는 남편은 하다 하다 이제는 고양이한테 배우라고까지 한다며 어이없어하는 눈치다.


3년 동안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니 고양이라는 생명체가 생각보다 자주, 그것도 몹시 시원하게 스트레칭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갓 잠에서 깨어나 온 힘을 다해 몸을 늘이는 크림이를 보고 있자면 나까지 개운한 기분이 든다. 그것은 마치 운동 유튜브채널을 침대에 누워서 보며 대리만족 하는 느낌이랄까.(하하) 몸은 또 얼마나 유연한지 항간에 떠도는 ‘고양이 액체설’(머리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녹아들어 간다는 썰)이 맞는 거 아닌가 착각이 일 정도다.



그날도 어디선가 한참을 자고 일어나 느릿느릿 걸어 나오던 크림이었다. 엉덩이를 한껏 들어 올린 채 앞발을 쭉 뻗었다가 다시 엉덩이를 내리며 앞쪽에 체중을 싣고 뒷발을 최대한 늘인다. 유명한 요가 유튜브샘들 동작 못지않다. 이 두 동작을 세트로 느긋하게 걸어오는데, 그 모습이 슬로모션이 걸린 듯 한없이 나른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자고 일어나 굳은 몸을 이렇게나 규칙적으로 풀어주다니. 인간보다 낫다. 그러니 주말이면 지나치게 소파와 한 몸이 되는 남편 아니 우리 인간들이 고양이한테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은 거다. 치타처럼 우다다다 달리기도 하고, 놀이시간엔 탕탕 뛰어오르며 점프도 곧잘 해대니 남편도 주말에 누워만 있지 말고 고양이처럼 스트레칭도 하고 이따금 뛰고 점프도 하면 좋으련만.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중년의 내 남편이 고양이에게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던 것이 입으로 나와버렸네 ㅎ) 어쨌든 허리며 무릎이며 아프다 소리 하지 말고 스트레칭이라도 꾸준히 하면 바랄 게 없겠다.


우리 집 냥이 크림^^ 쭉쭉~ 개운하당~





크림이에게 배워라 한참을 떠들어댔는데, 공교롭게도 다음날 읽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고양이한테 배울 점이 또 나왔다. 글쓰기에서도 고양이를 본받을 게 있다니. 글의 소제목은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이다.


방 안에 있는 고양이가 움직이는 물건을 응시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당신이 거리에 나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고양이의 태도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한문화, p.147



필시 저자도 냥이 집사이리라. 공감 가는 문장에 크림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삐져나왔다. 새로운 장난감이나 간식 앞에서 크림이는 제법 신중하다. 우뚝 멈춘 채 한참을 노려본다. 가느다랗던 동공이 점점 땡그래지며 초집중상태에 빠진다. 요즘말로 몰입의 경지에 다다른달까. 그야말로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그 물체를 파악하려는 듯 미동도 없다. 나에겐 들리지 않는 소리가 느껴지는 듯 짧은 귀가 움찔하는 찰나만 있을 뿐. 간 보듯 냥냥펀치를 짧게 날리며 반응을 살피다 엉덩이 실룩거림을 신호탄으로 치타처럼 덤벼든다. 지켜보고 있자면 긴장감에 나까지 쫄깃쫄깃해지지만 짧은 다리로 펀치를 날리는 모습엔 결국 입꼬리가 올라간다. 집고양이라도 이따금 야생의 본성이 느껴지지만 눈빛은 사랑스럽고 결국엔 귀엽다.♡

     

   고요히 응시하다 빛의 속도로 아뵤~!!!!!                   

           

책에서 저자는 동물처럼 자신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주변의 모든 것을 사냥해 보라 한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들을 하나씩 비축해 두라고. 그렇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현재의 모든 모습들을 보고 듣고 감지해서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라고 말한다.


아장아장 걸음마하듯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는 나는 쓸거리를 찾는 것이 여적 어렵다. 어릴 적 추억들은 아득하고, 며칠 전 기억도 가볍게 휘발 돼버리니 종종 막막하다. 몇 자 적다가도 이것이 내가 쓰고 싶은 먹잇감이 맞는지 자주 헷갈린다.


유명한 작가들이 ‘쓸거리가 없을 땐 일단 밖으로 나가 걸어보라’길래 운동 겸 아침 산책을 나가지만 낯익은 길에 익숙한 생각만 떠오를 때가 많다. 아마도 고양이와 같은 태도를 지니지 못해서였나 보다. 같은 길이어도 매번 똑같을 순 없을 텐데 고양이처럼 고요히 응시하지 않아 매일이 같은 풍경, 같은 일상처럼 보였는지도. 동물처럼 고양이처럼 감각을 동원해 나의 생각도, 감정도, 주변 풍경도, 사람들 표정도, 평범한 사물도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차곡차곡 사냥해 두어야겠다.


이렇게 또 글쓰기 책에서, 고양이에게서 한 수 배운다.

잘 배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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