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양이를
"뉴스 안 보고 싶어"
저녁식사시간엔 아이와 함께 뉴스를 본다. 뉴스를 보다 슬그머니 다른 채널로 옮겨가기도 하고, 그마저도 건너뛰는 날이 있지만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자며 TV를 켠다.
뉴스를 보다 보면 바로 다음에 나올 사건이 짧은 자막으로 예고되기도 한다. 며칠 전 화면 아래에 뜬 글자는 '만나 주지 않아서. 전여친. 고양이. 세탁기' 이런 거였다. 직감적으로 흉악한 뉴스임을 알아챘고, 아이는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 말했다. 얼른 채널을 돌려두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전여친, 고양이, 세탁기 세 단어를 키워드로 넣고 기사를 검색하는데 심장이 조용하게 쿵쿵거렸다.
"아.. 미쳐. 이런 미친.. 미쳤나 봐.. 미친놈 아냐?"
입에서 연신 욕이 흘러나왔다. 탄식과 함께. 만나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 여자친구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를 세탁기에 돌려 죽이고, 전 여친 살인 예고 글까지 올렸다는 20대 남자. 기사를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 누군가에게 들었어도 믿지 않았을 이야기. 목격했더라도 이건 꿈이라고 여기고 싶을 사건이었다.
며칠 동안 나는 우리 집 고양이 크림이를 더 많이 바라보고, 더 자주 말을 걸었다. 그때마다 얼굴도 알리 없는 가여운 고양이가 생각나 슬펐다. 고양이가 생각날 때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가 함께 떠올라 처참한 기분이었다. 상상조차 하기 싫어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어댔다.
이번 달 독서모임 책인 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을 읽은 참이었다. 주인공 목화는 열여섯 살 되던 해 봄, 꿈에서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높은 건물에서, 절벽에서, 대교에서, 선박에서 연이어 투신하는 사람들. 악몽인 줄 알았으나 이내 꿈을 통해 현실을 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공포에 질린 목화는 '눈을 감고 있으므로 다시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보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p.62)'라는 말로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을 전해준다. 제발 이 지옥에서 구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 투신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 보인다. ‘가서 받아'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화는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이끌려 단 한 사람을 구하지만 살린 한 사람보다 살리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 괴로워한다. 그렇게 느닷없는 죽음 속 단 한 사람을 구해야 하는 목화의 운명은 계속된다.
문득 생각했다. 내게도 목화처럼 단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그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까? 세탁기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생명체에게 다시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목화처럼 두 팔을 뻗어 가벼운 깃털 마냥 고양이를 떠올려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판타지적인가 싶다가도 소설 보다 더 허구 같았던 잔인한 사건 생각에 그저 한숨이 나왔다.
크림이를 보며 절박했을 그 고양이가 또 생각나 고개를 저었다. 눈을 감아도 계속 상상되는 장면에 '눈을 감고 있으므로 다시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보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라는 목화의 말을 실감했다. 빨간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게도 빨간 코끼리만 계속 떠오르는 것처럼 덫에 빠진 기분이었다.
목화는 결국 자신의 일이 다수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산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었다며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했으므로 남김없이 슬퍼하고, 마음껏 그리워하고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덮고 마음을 바꿔본다. 얼굴도 모르는 고양이이지만 애써 고개를 흔들며 떨쳐내려 하지 않고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슬퍼하고, 행복을 빌며 애도의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도 해본다. 나의 고양이를 후회 없이 사랑하기로. 사람도 동물도 나도 그대도 목숨은 하나. 단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