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추진되던 대규모 가상자산 규제 법안이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가상자산 시장법’에 서명을 거부하며, 해당 법안이 “국민의 경제적 자유와 자산권을 침해하고, 국가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별도 성명을 통해 “규제를 명분으로 한 과도한 개입은 산업을 위축시키고 신생 기업의 해외 유출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해당 법안은 여름부터 논의가 시작됐으며, 초기 단계부터 업계의 강한 반발을 받아왔다. 특히 가상자산 관련 웹사이트를 정부가 손쉽게 차단할 수 있는 조항, 과도하게 복잡한 규제 항목 등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가상자산 업계는 대통령의 결정에 환영 의사를 밝히며 “이 법안이 그대로 시행됐다면 스타트업은 체코·헝가리·리투아니아 등 규제가 비교적 완화된 국가로 이탈할 가능성이 컸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안드제이 도만스키 재무장관은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했다”며 “규제 공백이 길어지면 시장 혼란이 더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무부 장관 역시 “가상자산 버블이 붕괴해 국민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정부 측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규제는 필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통령은 단순히 규제 완화 차원을 넘어, 법안 자체가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감독 수수료 인상, 자료 제출 의무 확대, 복잡한 행정 절차 등은 신생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유럽 내 핀테크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과잉 규제는 곧 산업 공동화를 뜻한다”며 기업들의 해외 이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유럽연합은 이미 MiCA(가상자산 통합 규제 프레임워크) 시행을 예고한 상태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폴란드처럼 개별 국가가 지나치게 독자적인 규제를 추가할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의 판단에도 이러한 ‘규제 중복성’ 우려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거부권 행사로 폴란드 정치권은 더욱 양분된 구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규제 없이는 투자자 보호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진영은 “과잉 규제가 더 큰 손해를 가져온다”고 반박한다. 이로 인해 폴란드의 가상자산 규제는 EU의 MiCA 체계가 본격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전망되는 2026년까지 당분간 공백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