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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Sep 02. 2020

500g 신생아의 기적

 결혼식이 2주 정도 코앞으로 다가왔지만(D-16) 

기쁘고 설레기보다 싱숭생숭했던 마음으로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보내던 요즘.


 500g 미숙아를 만나게 되었다.

예정되어 있던 수술이 모두 끝나 마무리하고 퇴근하려던 중 소아외과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태변 마개 증후군(Meconium plug syndrome)으로  내일 수술이 예정되어 있던 아기였지만, 태변으로 가득 막혀있던 소장이 터져 응급으로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기는 몸무게가 500g밖에 되지 않아 수술실로 내려와 수술을 받는 것은 매우 위험하여 교수님과 직접 신생아 중환자실(NICU)로 가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받으러 오는 1kg 신생아들도 가끔 보면서 정말 작아 위태로워 보였는500g 신생아는 아기라 보다 뱃속에 있는 태아의 모습에 가까웠다.

 

 수술 준비를 하며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배를 열어 수술하기 전 broviac catheter라는 중심정맥관을 잡기 위해 패드를 말아 어깨받침을 넣고, 관을 넣는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모자 안으로 귀를 가리고 얼굴~목까지 테이프로 모자를 고정하는 과정, 그리고 그 작은 몸에 베타딘 소독액을 칠하는 것 까지 모두


  다행히 태변으로 막혀 있는 소장의 작은 일부분을 절제하고 가득 차 있던 태변을 모두 빼준 뒤 일시적으로 인공항문을 배 밖으로 만들어 주며 수술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숨을 쉬면서 수술까지 견뎌내며 하루하루 죽을 둥 살 둥 버티고 있는 아기를 보니 요즘 나의 투정은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올해는 왜 이렇게  하나하나 정말 쉽게 되는 게 없고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며 힘겹게 버티다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은 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그저 버티고 이 상황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유독 나에게만 시련이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 더 이상 '힘내자', '괜찮아질 거야'라고 주문을 걸며 안간힘을 쓰기도 싫었다. 그냥 버티기 힘들다고 마냥 투정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기를 만나고,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은 그 아기가 버티고 있는 상황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저 힘들다고 투정 부릴 만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도 씩씩하게 다시  일어나서 이 시간을 버텨내 보기로.

그리고 슬기롭게 행복한 결혼도 건강도 잘 지켜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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