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멍옥 Nov 06. 2020

혹독한 서른 나기

무지개의 위로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어."


 금요일 퇴근을 한 시간 정도 앞두고 수술을 마무리하고 나왔는데 부재중 전화 4통이 와있었다. 모두 오빠에게서 온 전화였다.

평상 시라면 근무 중 전화를 못 받을걸 알기에 톡을 남겼을 텐데 부재중으로 여러 통 와있는 전화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어느 정도는 직감했다.


수화기 너머 오빠는 첫마디를 내뱉은 후  머뭇거리며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우리 집에?... 혹시 할아버지 안 좋으신 거야?"라고 물었다.

"응.... 지금 아무래도 우리 빨리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 내가 간단히 짐 챙겨서 지금 바로 병원 앞으로 데리러 갈게."


 외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찾아온 이후 유일하게 가셨던 노인 유치원도 가시지 못하고 집에 거의 누워계신지 8개월이 조금 지났다.

당뇨, 통풍, CAOD(관상동맥 폐쇄질환)등 여러 기저질환은 가지고 계셨지만, 식사도 잘하셨고 치매와 거동이 불편한 것 외에는 기력만 많이 없으셨다.

주변에서는 요양원에서 모시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지만 엄마, 외할머니 모두 반대하였다. 식사도 못하시고, 숨 쉬기도 힘드실 정도로 악화가 되지 않는 한 집에서 모시기를 원하셨기에 엄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면서 할아버지를 매일 아침저녁 왔다 갔다 하며 간호하였다.

그 시간 동안 할아버지의 기력은 조금씩 쇠하시는 듯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컨디션이 괜찮아지셔서 희망을 주시기도 하고 오락가락했다. 그런 와중에 할아버지의 임종은 모두에게 갑작스러웠다.

당장 돌아가실 정도로 최근에 건강이 악화되진 않았기에 모두에게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오빠의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퇴근 준비를 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할아버지를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슬픔과 함께 슬픔과 충격 빠져있을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차마 엄마에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궁금했지만 전화해볼 수 없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겨우 붙잡고 있던 눈물샘이 와장창 터질 것만 같아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같이 일하는 선생님과 파트장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오빠와 같이 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는 길

창가를 보면서 계속 눈물이 흘렀다.

바로 옆에 살았으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더 살가운 손녀딸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후회만 들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유독 내려가는 길 날씨가 좋아 하늘이 너무 이뻐서 더 슬펐다. '왜 하필 이렇게 좋은 날에 할아버지는....' ,

'이제 정말 결혼 며칠 남지 않았는데, 손녀딸 결혼식도 보시지 못하고...'


 3일장 동안 비는 우리의 마음과 같이 계속 구슬피 내렸고, 마지막 발인날 태풍과 함께 많은 비도 예보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우리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할아버지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큰 비는 모든 일을 치르고 난 뒤에 내리기 시작했고, 다행히 태풍은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힘겹게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더 이상 울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당장 2주도 남지 않는 코앞으로 온 결혼식 때문이기도 했고, 의료파업으로 인해 병원도 뒤숭숭했기에 얼른 복귀해야만 했다. 마냥 슬픔에 잠겨 있을 수 없었다.


 4개월 전 결혼 날짜를 잡고 준비하는 동안 설레는 마음만 가득일 줄 알았는데, 시련은 계속 나를 찾아와 흔들고 힘들게 했다.


 잡히지 않는 코로나뿐만 아니라 갑작스레 찾아왔던 갑상선암과 수술 그리고 할아버지와 이별까지.....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많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마냥 내가 견뎌야 했던 시련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주변에선 '결혼 전에 액땜하는 것이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결혼 후엔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잘 살 것이고,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다.'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나도 그렇게 받아들이려 노력했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단히 힘을 냈다. 그런데 연속해서 시련이 찾아오니 나도 마냥 오뚝이처럼 버티고 서있기엔 힘에 부쳤다. 왜 나에게만 계속 비운의 드라마 여주인공 마냥 이런 슬픈 일들이 생기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독립을 하게 되고, 20대 중반에 접어들고 나서부터는 힘든 일이 생기게 되더라도 전적으로 부모님께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엉엉 울고, 투정만 부리던 예전과 다르게 혼자 힘든 시간을 티 내지 않으려 하고 감내하려 애썼다.

슬퍼도 마냥 어린아이 마냥 투정 부리고 울고 마는 게 아니라 이제는 슬픔을 삭히며 괜찮은 척,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 하루하루를 다시 이겨내야 한다고 그리고 살아가면서 앞으로 지금보다 더 힘들고 슬픈 나날들이 있을 거라는 것이라는 슬픈 예감을 하며 단단해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하루하루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번엔 힘들지 않은 척 애쓰고, 이 힘든 상황들을 마냥 씩씩하게 헤쳐나가기엔 녹록지 않았다.

2주도 남지 않은 결혼식을 앞두고 나의 눈물샘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상태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던 중 지친 마음으로 병원을 나온 순간 눈앞에 커다란 무지개를 만났다.

그림, 사진 속 무지개가 아닌 내 눈 앞에서 펼쳐진 하늘에 새겨진 큰 무지개.

그렇게 큰 생생한 무지개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처음 보았다.


그 무지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흐린 날이 지속되고 비가 그친 이후 잠깐 동안 모습을 들어내 줬던 무지개처럼 앞으로 살아가게 될 인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날, 행복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는 힘든 나날들을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살다 보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힘든 터널을 만날지라도 종종 이렇게 무지개가 반짝 위로해주는 날도 있을 거라고.

마냥 슬픔에 잠겨있지 말자고.



이 글을 무지개를 보았던 그 날 써놓고선 정신이 없어 두 달가량 서랍에 넣고는 다시 꺼내보지 못했다.


그 시간 동안 무사히 행복한 결혼식도 올리고, 할아버지의 임종을 치르며 힘들었던 시간도 어느 정도 평상시대로 다시 흘러가고 있다.


혹독했던 서른, 잊지 못할 2020년 한 해가 벌써 2달도 남지 않았다.

정말 힘들었던 시간도, 행복했던 시간도 모두 존재했던 다이나믹했던 올해.


매년 연말이 찾아오면 올해는 무엇하나 제대로 해낸 게 없단 생각에 무언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군분투했었지만, 올해 연말은 많은 일을 치렀던 한 해였기에 남은 시간 동안은 차분히 그저 특별한 일 없이 무사하게 별일 없이 평범한 시간들을 보내며 하루하루를 온전히 느끼며 보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올해가 가기 전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