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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Oct 13. 2020

올해가 가기 전까지

아픔에 귀 기울기

 요즘 따라 목과 어깨가 점점 더 욱신거려 퇴근하고 용하다는 재활의학과를 찾아갔다.

먼저 엑스레이를 찍고 간단히 진료를 보았다.

엑스레이 사진 속 목과 골반이 영 불안정해 보였다.

허리가 안 좋고 일하는 자세도 늘 좋지 않기에 안 좋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듯한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도수치료를 권유받고 상담실로 가서 만난 간호사 선생님은 연신 어디가 아픈지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셨다.

통증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요즘 욱신함이 심해졌고, 어깨를 둘러싸고 있는 근육이 딱딱해짐을 느꼈기에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고 찾아온 건데 계속 통증이 있는지대해서만 여쭈어보셨다.


 나는 아픔을 잘 참고 견디는 편이다.

웬만해서는 통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8년 전 받았던 수술로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큰 고통을 느낀 이후 나에게 통증의 기준은 높아졌다.

14살 척추측만증을 진단받은 이후 허리는 조금씩 더 나빠졌고 결국 삐뚤어져있던 흉추와 요추를 교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5일을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 바로 눕는 것도 옆으로  눕는 것도 혼자 할 수 없었다. PCA(자가 조절 진통제)가 지속적으로 투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4시간마다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야 했다.

수술 후 10일을 입원해있는 동안 통증은 점점 나아졌지만 혼자 침대에서 앉는 일도 홀로 걷는 것도 그땐 버거웠다.


 내가 통증이 심하다고 느끼는 기준은 그때 그 통증의 강도쯤 될 것이다.

그 높은 기준 때문인지 여태까지는 고통이나 힘듦에 웬만해서는 반응을 잘하지 않았다.

22살 척추측만증 수술로 척추 양쪽 10 몇 개씩 핀을 박는 수술을 견디고 26살 홀로 서울에 올라와 태움을 견뎌내고 병동 간호사 생활을 2년 넘게 이겨낸 뒤에 나에게 남은 건 무뎌짐이었다. 그저 그 힘든 시간을 괜찮다며 꾹꾹 눌러서 이겨낼 뿐이었다.


 그 이후 웬만에선 아프다고 힘들다고 하지 않고, 이 정도면 그때에 비하면 견딜 만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게 최선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얼마 전 갑상선암이 찾아왔을 때 힘든시기를 겪어내며 깨달았다.


좀 더 민감해지고 아픔을 느낄 필요성을.

아픔과 힘듦을 느끼는 마음이 무뎌진 건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갑상선도 아마 나에게 힘들다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결국 버티다 못해 나에게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선고를 하였다.


 허리와 목도 끊임없이 뻐근하다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었다.

그럼에도 나는 요즘 현대인들 중 자세가 바르고 목, 어깨가 안 아픈 사람이 어딨을까. 다 똑같지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매일 혹사시켰다. 돌보려 하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스트레칭이라도 하면서 고생했던 목과 허리를 풀어줘야 하는데 피곤하다는 핑계로 바로 침대에 누웠다. 아픔을 모르는 척 방치한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버렸다.

그러다가 이제야 더 이상 모른 척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많이 아픈 뒤에 알게 되면 이미 늦었다는 것을.


 이번엔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더라도 나아지기 전까지는 노력을 해볼 이다.

이제 더 이상은 살아가면서 크게 아프고 싶지 않다.

허리 수술 후 8년이 흐르면서 이미 수술 부위 주변으로 유착도 되고, 근육들이 힘을 다 잃었지만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다면 나아진다면  지금이라도 노력해야지!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지만 지금이 가장 빠른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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