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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May 20. 2024

느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영혼이 따라오는 시간

"영혼이 자신을 따라올 시간을 기다려주세요."


어느 날 법정스님의 강연을 듣다가 이 말을 듣고 뜨끔했다. 요 몇 달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많은 업무에 허덕임과 일을 하나씩 끝낸 후의 성취감과 쉬고 싶다는 마음이 복잡적으로 버무려져서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들은 이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그는 짐을 함께 들어줄 3명의 원주민을 고용해서 함께 가고 있었다. 그들은 사흘 동안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사흘째 되는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탐험가는 갈길이 멀다며 원주민들을 향해 화를 내며 재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답답했던 탐험가는 그들을 타이르다 지쳐 물었다.


"대체 왜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그러자 원주민이 대답했다.


"우리는 사흘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너무 빨리 걸어오기만 했다.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한다."




원주민들은 탐험가가 시키는 대로 정신없이 쫓겨 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현대인의 삶과 매우 닮아있다고 느꼈다. 사업자를 내고 프리랜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내 루틴을 내가 만들어야 했고, 쉬는 시간이 사치처럼 여겨졌고, 누군가를 만나서 노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일을 따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다른 사람들의 스타일을 많이 찾아보면서 이런 스타일, 이런 메세지들이 잘 먹히는구나를 보고 따라 하려고만 했다. 아니,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할 거라는 다짐을 하면서도 어느새 인기 있는 작가들의 스타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포트폴리오를 쭉 보다가 생각이 들었다. 예전 작업들에는 내가 좋아하던 스타일, 그리고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분위기가 녹아있는데, 최근 작업들을 보면 왜 남을 따라 하려고 하는 것 같지? 왜 내 작업 같은 애정이 들지 않지?


지금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혹하고 그 작업들이 왠지 멋져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어렵게 사는 창작자들에게는 더더욱. 제로웨이스트와 미니멀한 삶이 체화된 요즘은 생활비가 30만 원으로 확 줄어들었음에도 더 많이, 빨리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자꾸 내 엉덩이를 채찍질하고 있다.


동시에 4월부터는 밭 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풀을 잡고 모종을 키우고 씨앗을 뿌렸다. 밭에서 일어나는 행사들을 기획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사진을 찍고 컨텐츠를 만들었다. 내년 단식을 위해서 잡풀을 수확해다가 효소도 만들고, 동반작물 식재 공부 모임도 하고, 그림 그리기 모임도 계속 참여했다.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 운동도 꾸준히(?) 나갔다. 그 와중에 청년기후긴급행동 지구의 날 행사도 참여하고, 텃밭화분을 사다가 멤버들이 먹을 작물을 자급하도록 식재해 주었다.


며칠 전에는 희원이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겠다고 했다. 나도 가입하겠다 했지만, 동시에 열심히 안 살면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능력주의, 성과주의 사회에 3n 년 살아온 경험이 나의 습을 지배해 버렸다. 덕분에 퇴사 후 3년 동안, '적게 벌고 적게 쓰고 행복하기' 연습을 했지만 아직도 완벽하게 바뀌기가 힘들다. 습관이 되려면 아무래도 10년은 버텨야겠지...


5월 마지막주는 내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나에겐 기록이 그러한 과정이다. 열심히 무언가를 수행하기만 했던 시간이 있다면 그 일들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 또한 중요하다. 미루고 미뤘던 글을 쓰고, 쌓이고 쌓인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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