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의 삶
저녁 시간에는 마침 있던 두 명의 우퍼들과 호스트 세 분, 그리고 우리 부부가 식탁 앞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우리 부부도 귀촌을 생각하고 있는지라, 세 명의 여성 친구들이 모여 귀농을 하게 된 이야기가 가장 궁금했다. 세 분은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다가 귀촌에 뜻이 맞아 함께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별히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기성 가족과 다른 형태의 세 명의 여성 가족에게 내비쳐졌을 마을 사람들의 편견이 사뭇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의 문화에서는 기성의 가족 형태를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있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가족이 아닌 홀로 시골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겨졌다. 실제로 홀로 귀촌한 여성분이 주변의 남다른 시선과 지속적으로 공동체에서 느끼는 소외감으로 인해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올라온 사례도 있었다.
그런지라 세 분의 호스트가 더 멋져 보였다. 처음에는 마을 할머니들도 경계를 보이는 듯하다가도 세 분의 적극적인 마을 활동에 마음의 문을 여신 것 같았다. 소나무 호스트님이 마을 할머니들께 한글을 가르쳐드리고 시를 함께 쓰는 활동을 했다며 할머니들의 시를 보여주셨다. 시의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할머니의 남다른 단어 선택과 감수성이 눈에 띄었다. 시는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작품집을 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시였다. 시와 마을 사람들의 사진을 모으니 하나의 달력이 완성되었다. 마을 할머니들은 일상적으로 보는 달력에 자기의 이름이나 얼굴, 작품이 들어가 있으니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뿌듯함을 느꼈을게다.
그 외에도 호스트님은 산림청에서 지원하는 산림일자리발전소에서 단양 지역의 그루매니저로도 선정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지원금을 받아 다른 그루경영체들이 진행하는 교육도 들으러 다니신다고. 또한 숲 먹거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하며, 시골마을 살리기 운동에 진심이시다.
귀촌을 한 사람들이 마을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민들과 불화를 겪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서울에 살던 방식대로 애매한 땅 구획부터 확실하게 하려고 주민들이 다니던 길에 말뚝을 박는다거나, 울타리를 친다거나. 마을 이장은 마을 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외지인들에게 사용처도 명확하지 않은 돈을 부과한다거나. 기금을 내지 않았을 때 마을 회의에도 초대를 하지 않고, 마을의 의사결정 권한을 주지 않는다거나. 귀농귀촌에 대한 편견을 견고히 하는 콘텐츠만 잔뜩이었다. 허나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가 더 많고, 이렇게 하나하나 가까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람 사는 정이란 게 참 따스하다.
처음 시골을 내려가려고 생각했을 때는 약간 '도시가 싫어! 사람이 싫어!'서 가는 도피의 감정이었다. 숲 속 오두막에 발길이 닿기 힘든 오지에 월든의 소로처럼 자발적 고립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시골살이의 꿈을 구체화하려고 상상해 보니 시골에 살아본 적도 없는 나는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금방 뛰쳐나올 게 뻔했다. 시골살이는 상당 부분 자급의 생활이다. 시골에서도 군내 아파트에 살 것이 아니라면 세월에 닳는 시골집을 고치는 기술도 필요하고, 먹거리를 반 정도는 자급하며 요리해 먹는 생활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모든 것을 자급할 수는 없으니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서로 나누어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마을의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기 위한 연대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도시에서만 살다 보니 삶이 철저히 개인주의화 되고, 옆집 윗집과 불필요하게 교류하여 내 삶을 노출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오히려 이웃들을 경계하고, 세입자가 수시로 바뀌는 오피스텔에서는 더더욱 보안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주변 이웃들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허나 나는 그렇게 끊긴 연결을 다른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서 찾고자 했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인 '취향관'에 돈을 내고 모임을 나가고, 소모임이나 동아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혼자 있는 게 매우 익숙한 나로서도 어쨌든 이런저런 교류를 통해서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세계와의 연결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양의 작은 마을에 와보고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로 그득한 도시를 그렇게 혐오했으면서 막상 한적한 시골에 와서 보니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가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 오히려 부족할 때 우리는 소중함을 느낀다. 물론 집안 사정을 사사건건 모두 알고 있는 시골 마을의 깊은 오지랖(?)은 문제이지만,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면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사람을 싫어하던 나는 사람을 포용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