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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Nov 17. 2023

사람을 배우고 있습니다-(2)

단양 말금마을에 사는 사람들

'서울깍쟁이가 왔구나.'

우프 호스트님이 나를 보고 받았던 첫인상이라고 고백하신다. 도시에서도 무뚝뚝하고 다가가기 어렵다는 인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지라 그리 놀랍지 않았다. 우프 농가에 들어가는 길, 만나는 사람마다 호스트님이 우리를 소개하고, 우리는 마을 주민분들께 인사를 했다. 나는 워낙 붙임성이 없어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익어도 인사를 하지는 않았으니, 반갑게 인사해야 하는 상황들이 어색했다. 그나마 쾌활한 성격의 남편이 반갑게 인사해주니 다행이다 싶었다.


굽이진 소백산 자락, 구불구불한 산길을 차로 올라가다 보면 대여섯 가구가 한눈에 보이는 말금마을이 나타난다. 달팽이 텃밭은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 산을 배경으로 폭 담겨있는 자리에 위치한 농가이다.  

소나무, 산소리, 블루비. 귀여운 닉네임을 가진 세 분의 호스트가 함께 사는 공간에 들어섰다. 층고가 높은 천장 한가운데는 나무로 만든 유려한 곡선의 실링팬이 조각처럼 달려있다. 흰 벽 중간중간 목재로 만든 몰딩이 들어가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몰딩 사이에 작은 창문이 있었다. 생각보다 멋진 인테리어에 놀라 물어보니 이전에는 음악가 부부가 살던 집이었다고 한다. 어쩐지 예술가의 감성이 묻어있었다. 가운데 큰 공용거실을 중심으로 주방과 작은 방들로 연결된다. 우리가 머물 방을 배정받았다. 따뜻하고 아늑하다. 소나무 호스트님이 마을을 한 바퀴 구경하자신다.


집 문을 열고 나서면 앞에 펼쳐지는 소백산의 풍광이 예술이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마을 입구에 어떤 차가 들어오는지까지 보이는 마치 터줏대감 같은 집이었다.


집 앞에는 콘크리트 벽돌로 만든 작은 창고 같은 건물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생태화장실이라고 한다. 밭작물들에게 좋은 거름이 되는 인간의 분변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모아서 퇴비화를 시키도록 아래에 꺼내는 문도 있다. 언뜻 생각했던 시골 푸세식 화장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생태화장실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냄새가 안 난다고 했지만 백프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푸세식 화장실을 좋은 말로 바꾼게 아닌가 정도로 생각했다. 

귀여운 나무 걸쇠를 돌려 들어가 보았다. 볼일을 보려고 쭈그려 앉으면 눈앞에 소백산이 펼쳐지는 창문이 있다. 창틀에는 나름의 장식도 있다. 절에는 근심을 더는 공간 '해우소'가 있다면 이곳에는 여유와 낭만을 느끼는 '낭만소'가 있었다. 무엇보다 볼 일을 보고 나면 재를 넣어 덮어주니 정말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분변이 모두 분해되어 퇴비가 되면 흙냄새밖에 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싼 똥이 그저 버려지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밭의 소중한 거름이 된다고 생각하니 무척 뿌듯했다. 생산부터 퇴비까지 순환의 사이클이 완성되는 기분이다. 우리는 어찌 보면 한 조각의 쓰레기도 생산하지 않으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인분뿐만 아니라 소, 돼지, 닭, 개 등 모든 동물들의 분변이 사실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자연의 양분인데 무엇하러 우리는 화학비료를 굳이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던 걸까. '니 똥은 니가 치워!'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생태화장실과 그 뒤로 해가 떨어지는 멋진 풍광


그 외에 기억나는 마을의 조각들. 산 중턱쯤 위치한 산소리님의 집. 명상을 하고 꽃차를 만드시는 분이라 조용하고 차분한 기운이 든다. 그 작은 집 앞에는 풍경을 가로막는 다른 건물이 하나도 없어 멋진 작품을 독차지한 느낌이다. 집 앞 작은 정원의 화단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것을 보니 예술가가 분명하다. 마을 길목에 위치한 집의 강아지 두 마리는 멀리서부터 짖는다. 사람의 머리 꽁무니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쉴 새 없이. 무슨 과업을 지고 태어났기에 저렇게 열심히 짖는 걸까. 마을입구에 보호수처럼 크게 자란 소나무 두 그루. 하나는 하늘을 향해 길쭉하게 뻗어있고 하나는 땅을 향해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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