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아침, 펜션 근처 해장국 가게는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을 단풍이 한창이니, 다들 부지런히 산을 오르려 든든히 배부터 채우는 것일 터다. 엄마와 나도 뜨끈한 국물로 속을 데우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인제 백담사 근처에서 하루를 묵은 우리는 울산바위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까지 30여 분을 더 달렸다.
미시령을 넘어가는 옛길, 오른편으로 기개 넘치는 장군 같은 울산바위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줄 지어 선 수직암릉은 현실감을 잃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50분, 흔들바위가 있는 계조암에 도착했다.
신흥사의 부속 암자인 계조암에는 동굴법당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엄마와 삼배를 하고 나서는 길에 마침 사시예배가 시작되어 다시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사시불공이 처음인 나는 들고 나기를 반복하다 삼성각 계단에 앉아 먼 산만 바라보고, 흔들바위에서 사진을 찍는 등산객들을 구경했다.
10월의 서늘한 공기가 목덜미에 와닿았다. 숨을 들이켜니 코 속이 싸해졌다. 몸속에 가득 채워진 가을은 옅은 연기가 되어 입술 사이로 빠져나왔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기도가 끝날 무렵, 스님은 점심을 먹고 가라며 요사채로 우리를 이끌었다. 산행을 계속하고 싶어 입이 삐죽 나와 있던 나는 이미 점심시간이라 군 말 않고 따라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가라는 스님은 식사가 끝나자 보이차까지 내어주셨다.
요사채의 문틈으로 보이는 설악은 절경이었다. 이런 곳에 사는 스님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뜻한 곳에는 가지 못했지만, 대신 이런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느냐며, 무엇이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되는데, 그것이 ‘인연’이라고.
서울로 돌아와야 했기에 결국 우리는 울산바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대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산과 산 사이에 굽이쳐 흐르는 계곡과 단풍을 구경했다.
산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나는 부모덕을 많이 보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스님 말씀처럼 산행 중에 긴 법회를 끝까지 지켜낸 이들이 드문데, 서둘러 내려가지 않은 엄마 덕에 뜻하지 않은 시간을 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가족을 위한 기도였기에 중간에 법당을 나서지 않은 엄마를 생각하면, 산중에서의 차담은 물론 부모의 마음도 헤아리게 되었으니 나는 하나가 아닌 둘을 얻은 셈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