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Jul 12. 2023

마우나케아, 별, 어둠

별이 보고 싶었습니다. 별보기가 이토록이나 힘든 일이라며 밤하늘 한번 올려다보며 그 많던 별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하는 허전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마우나케아.

천체 우주분야에서 세계최고의 위치에 있는 이곳, 적도부근에 위치하여 북반구의 모든 별과 남반구의 대부분의 별들을 관측할 수 있는 곳. 하늘 아래 가장 가까이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구비 구비 산등성을 올라갑니다.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구름 속을 들어가게 되고 자동차 비행기를 탄 것 마냥 그렇게 구름 속에 흩뿌리는 비를 맞습니다.

'구름은 어떤 맛일까?'

첫째 아이가 궁금해합니다.

'한번 먹어봐.'

제가 조심스레 권해봅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도로, 구름 속을 지나가며 창문을 내려 손을 내밀어 봅니다.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옵니다.

"음... 축축한 맛이야. 구름은..."

아이의 말이 이어집니다.

자동차를 타고 산 위로 위로 올라가는 동안 만나는 하늘과 구름 그리고 빛의 향연, 꼭 도로에서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비구름 속을 들어갔다 나온 후 만난 풍경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땅이 맞을까요?

구름 속을 지나가는 신기한 차를 타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신비의 지역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우나케아라는 말이 하와이어로 '하얀 산'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신화 속 눈의 여신이 살던 곳이라고 하네요.

"엄마, 우리는 저 멀리 우주에서 온 사람들이야. 잠시 지구에 들른 거지."

아이는 조잘조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바쁩니다. 어째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기도 한 것이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동화책 속 주인공이 조금 바뀐 것 같네요. ^^


저기 샛별이 보이네요.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 하늘이 보라색을 펼쳐 보여줍니다.

마지막 한 줄기의 빛이 사라지기 직전

이 순간이 가장 좋았어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기 직전의 시간, 하늘이 붉은 톤으로 움직이다 못해 마지막으로 내는 핏빛의 보라. 찰나의 순간. 그리고, 이 순간이 지나가면 해는 없습니다. 그 후로는 캄캄한 어둠뿐입니다.


멀쩡하던 아이는 작년 이맘때,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쓰러졌고 그렇게 깜깜한 어둠이 닥쳤습니다.

(6월 13일 저녁 7시 30분경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 가장 빛나는 별.

적막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별.

마지막 빛 한 줄기까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가만히 응시하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수많은 별.

어둠 직전의 하루, 마우나케아

정반대의 단어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던 한 해였습니다. 어둠과 빛, 슬픔과 행복, 아픔과 기쁨 이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 그리고 가장 반짝이는 별은 가장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돋보입니다.

어둠이 있어야만 빛이 보인다는 사실은 큰 희망이기도 합니다.

마우나케아 비지터센터에서 바라본 아주 늦은 석양

매일 해가 뜨면 새로 태어나고, 해가 지면 죽는 하루를 살았습니다.

단 하루만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귀한 하루.

하루의 정성을 담아 귀하게 귀하게 쓴다면,  무슨 일이 닥쳐도 어쩌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마우나케아, 별이 나오기 직전, 한줄기의 붉은빛이 땅꺼미로 사라지기 전에.

한줄기의 붉은빛이 땅꺼미로 사라지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 별은 등장하고, 이 끝없는 어둠이 끝날 무렵, 이글거리는 해가 뜨는 갸륵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엄청난 기적, 매일을 누립니다.

매일 해가 뜨고 진다는 기적, 마우나케아, 하와이 빅 아일랜드

하나의 별을 유심히 응시하다 보면, 점점 더 많은 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반짝이를 뿌려놓은 까만 카펫 같아요.

별자리 설명을 듣는 사람들, 마우나케아 비지터센터, 하와이 빅 아일랜드

여짓 살면서 지구가 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거의 못하고 지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대기권, 성층권으로 이루어진 구 형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투명하게 비치어, 저 멀리 우주 깊숙한 곳의 빛까지도 보이는구나, 감격스럽습니다.

핸드폰으로 별 사진 잘 찍는 법을 검색하긴 했으나... 마우나케아 별 보기

신성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감히 제가 발 디딘 이 세상과 하늘 저 너머 우주를 연결해 주기 위해 별들이 투명히 비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물 무렵, 어둠에 압도되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까만 김처럼 보이면 안 될 텐데... 하며 노출시간을 오래도록 두고 핸드폰으로 찍은 별 사진

"엄마, 별똥별이야. 저기 저기 좀 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소리만 들리는 까만 세상 속에서 우리 아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살아있는 지구, 움직이는 우주, 그 안에서 영원히 흐르지 않는 것은 없을 거라고. 이렇게 지금 하루도, 우리의 인생도, 아이의 삶도, 모두 ever-changing 하며 어디론가를 향해 가고 있을 거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 한 시간에 15도, 그것은 절대로 멈춰있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휘둥그레 떴던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p.253>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으로 살아가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응원합니다. 언젠가 마음속 깊이 넣어두었던 니체의 문구를 꺼내면서요.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마음속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 (니체)


오늘 본 반짝이는 별을 가슴 가득 담습니다. 가슴 가득 별이 찬 사람은 이제 어떤 어둠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요.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환해지는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