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죽어서 천사가 되어 네 곁에 있을 거야.
유한하고 아름다운 시간
포근한 이불 아래 작은 베개를 두고 여덟 살 아들과 머리를 맞대며 나란히 누웠다. 아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부드러운 뺨과 머리카락이 나의 얼굴에 닿는다. 나이가 들며 무뎌진 피부 감각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드는 시간, 오늘 하루를 보내주며 내 곁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해서, 혹여나 이것이 자고 일어나면 사라질 꿈이 아니기를 오늘도 바란다.
"엄마"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부른다.
"엄마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목구멍에 걸린 돌멩이 같은 침을 꿀꺽 삼킨다. 이내 켁켁, 사레에 들린다.
"우리 호가 죽으면 엄마는 많이 슬프겠지. 이렇게 안아주지도 못하고, 볼 수 없으니 엄마도 호가 있는 곳으로 따라가고 싶을 거야. "
뜨거운 눈물이 눈 안에 가득 고인다. 아이를 향해 돌아누워 한쪽으로 눈물을 모아 몰래 닦을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한다.
"근데 있잖아. 죽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잖아. 거기 가면 다 만날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못 보는 동안은 우리 마음으로 만나는 거야."
그리고 힘주어 덧붙인다.
"그리고, 죽긴 왜 죽어! 엄마랑 같이 천년만년 건강하게 오래 살 건데. 그러니, 그런 걱정일랑 말아."
아이는 가만히 듣더니 조심스레 말한다.
"나는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천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
주먹 쥔 손으로 얼굴을 스윽 문지르며 아이가 뒤돌아 눕는다.
"엄마는 천년만년 호랑 같이 살 거지만, 엄마가 혹여 먼저 이 세상을 떠나도 천사가 되어 옆에 있을게. 그래서, 우리 호야가 기쁜 일, 힘든 일 있을 때마다 함께해 줄 거야. 복을 많이 내려주면서."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아이는 양을 세어달라고 했다. 양 190마리를 세면, 슬프지 않고 잠이 잘 올 것 같다며. 천천히 양을 세어주었다. 열 마리가 끝나면 '포근포근하고 몽글몽글하고 하얀 양이 여기 많이 있어요. 호 옆에 가득 왔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아이는 양 178마리를 세자 잠이 들었다. 쌔근대는 숨소리가 고르다. 가만히 아이의 가슴에 나의 손을 포갠다.
'하느님, 제가 죽으면 꼭 천사가 되어 이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게 해 주세요."
언젠가, 벌어질 멀고 먼 미래의 일이, 까마득해서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되던 아주 오래 후의 일이, 바로 내일의 일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이다. 소중한 지금을 살고 그렇게 현재가 쌓여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웠을 부모님이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흰머리가 가득 머리를 덮고, 점점 야위어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당연시 여겼던 나의 모든 과거가 축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부모님이 사라지더라도, 나는 그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에 담아 살아낼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가을은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지만 아쉬울 정도로 짧다. 이 계절을 누리면서도 이 계절이 끝내 지속되지 못할 걸 알기에 늘 마음 한편이 슬프다. 그렇기에 어쩌면 더 기쁜 마음으로 누리지 못했을지도 모를 나의 계절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겠지.
부모님과의 인연, 자식과의 인연이 닿아 있는 이 축복의 시간은 유한하고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