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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Apr 13.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71. 가족이 아픈 이들에게: 남겨진 가족분들께

  정신과는 생명과 죽음을 다루지 않는 진료과라는 오해를 받지만 정신과 진료실에서도 죽음을 자주 만납니다. 바로 자살입니다. 자살을 바라는 사람, 그리고 이미 자살하신 분의 유가족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으신가요?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내가 뭘 놓쳤을까?' 인 것 같습니다. '내가 그때 그 신호를 놓쳤을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짜증내고 전화기를 꺼버려서일까?' '하도 지겨워서 '그래, 차라리 죽어라, 같이 죽자'라고 한 것이 잘못이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되뇌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을 점점 미워하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때로는 먼저 가신 분을 원망하게도 되는데, 그렇게 원망하는 자신을 더 괴롭힙니다.


  이런 생각은 꽤 오랫동안 유가족을 떠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고 상황을 다시 바라보며 '내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제일 좋지만,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버리거나 먼저 간 이를 쫓아가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complicated bereavement). 그리고 안타깝게도 유가족도 먼저 간 이를 따라가는 연쇄적인 자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고 답답해서 '너 때문이 아니야'라던지 '너라도 정신차려야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유가족도 머리로는 '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가족과 나의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머리만 알 뿐 몸과 마음은 완전히 따로 놉니다. 그러니 헛된 지식입니다.


  유가족에게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굳이 어떤 말을 하지 않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위로를 주는 사람과의 접촉, 일상생활의 규칙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활동, 필요하다면 치료적 지원이 제공되는 환경입니다. 공간에서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의 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안전하게 계시기를 바랍니다. 불쑥 찾아오는 자기 비난도, 자기 혐오도,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시간이 지금보다 많이 지나면, 지금은 알지 못했던 것들과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시기가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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