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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29.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66. 휴식은 시간을 내서 하는 것입니다

  '쉬다'의 사전적 상의를 살펴보겠습니다. 1)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다, 2) 잠을 자다, 3) 물체나 물질 따위가 움직임을 멈추다, 4) 일이나 활동을 잠시 그치거나 멈추다 등의 정의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쉬다’의 본질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누이거나 기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쉬고' 계신가요? 많은 사람들이 쉰다고 하면 일을 그만두거나 최소한 며칠 휴가를 가는 것,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휴가를 받거나 쉬는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모두가 잘 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밀린 또 다른 일 (사람을 만나는 일, 밀린 집안일과 같은 것)을 해치우지요. 결국 일만 쉴 뿐 몸과 마음은 여전히 분주합니다. 진료실에서는 일에 쫓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모처럼 반차나 휴가를 냈다고 하셨는데,  '해치워야 할 또 다른 일'인 진료를 보러 오신 거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아픕니다. 진료는 휴가의 일부일 뿐 나머지 시간을 즐겁게 사용해 주시리라 믿어봅니다.


  그나마 휴가를 내서 진료를 오시는 분은 다행인 편입니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쉴 시간'을 내지 못해 시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몸에서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무시합니다. 해가 갈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지고 그만큼 효율도 좋아지지만, 그만큼 우리 머리는 처리해야 할 일이 늘어나서 몸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직장에서는 근속 연차만큼 휴가 개수도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 세대에는 주 6일을 근무하던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의 3040에게는 주 5일이 당연합니다. 어쩌면 나중에는 4.5일, 4일 이렇게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워크-라이프 밸런스(워라밸) 측면에서 업무 일수가 줄어드는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현대인들에게는 자극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쉬는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는 전 세계적 합의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혹시 여러분은 쉬는 날에도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고 계시진 않나요? 아니면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다음 일을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쉼이 부족한 몸은 잘 쉬었을 때만큼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좋지 않습니다. 잘 쉬려면 하던 일을 일단 잠시 멈춰야 합니다. 스마트폰도 내려놓고, TV도 가능하면 끄고요. 이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자극을 주고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책도 내려놓고, 그냥 누워보세요. 쉬는 시간을 내고, 쉼에 집중해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첫째를 갓 낳았을 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았지만 나를 위한 시간이 전혀 없다는 느낌과 뒤쳐진다는 불안이 몰려왔어요. 그래서 아이가 낮잠을 자면 졸린 눈을 비비고 책을 보고 공부를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깨고 나서 너무 피곤한 거예요. 눈을 맞추고 놀아주는 시간 동안 계속 졸게 되었습니다. 문득 내가 이러려고 휴직을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휴직의 목표니, 우선 아이와 함께 시간을 잘 보낼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로는 아이가 잘 때 함께 부족한 잠을 먼저 채우고, 가끔은 그냥 옆에서 뒹굴기도 하다가 충분히 쉬었다 싶으면 그다음에 책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맑은 정신에서 책을 읽은 것이 당연히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에게 몰두한 1년을 보내고 복직했을 때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쉬는 시간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나머지 시간을 심각하게 방해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먼저 쉬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시도해 보세요.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이 쌓여 여러분의 시야를 확장시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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