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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n 08.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79. 슬픈 편지

  진료실 책상을 정리하다가 환자분들이 보내주신 편지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병동에서 적어주신 것, 병원으로 우편으로 보내주신 것, 외래 진료 볼 때 슬쩍 두고 가신 것 등등 수신 방법도 참 다양했습니다. 퇴원을 조르는 것부터 감사를 전하는 것, 자신의 나고 자란 역사를 적어주신 것까지 내용도 참 다양했습니다.


  그중 몇몇 편지는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들이 보내신 것입니다. '이러저러하게 선생님을 괴롭혀서 죄송하지만 덕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용기를 주셔서 감사하다, 외래에서 계속 뵙겠다'라고 써서 주시고선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술'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중독이 얼마나 치명적인 병인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친절하며 예의 바르지만, 술을 마시는 순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자기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학대합니다. 그 무서움을 깨닫고 나면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원도 하고 통원 치료도 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회복하지 못하는 분도 계십니다. 회복해보려 했는데, 이미 병이 너무 많이 진행돼서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회복이라는 것이 뭔지 알지 못하고,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경우도 너무 많습니다. '나아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편지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악의 손아귀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정말 절망적이고 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중독은 진행성이고, 치명적인 병입니다. 


  슬픈 편지가 제게 주는 메시지는 확실합니다. 

  '저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게 빨리 도와주세요'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혹시 중독의 어려움으로 남몰래 고민하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전문가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중독은 진행성이고 치명적인 병이지만, 회복하는 방법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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