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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n 10.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80. [책 추천]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

  진료실에서 중독 환자들을 보고 있자면 ’당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여기 정말 많이 오시는데.. 그들이 어떻게 해내셨는지 말해드리기도 참 어렵고..‘하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사람들은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게 되는데 ‘중독’이라는 영역이 특히 그렇습니다. ‘선생님 술 마셔요?’ ‘선생님처럼 사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이해해요’와 같은 말에는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 ‘선생님은 날 고칠 수 없어’라는 신념이 담겨있을 때가 많고,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벽에서 튕겨져 나와 무력감과 허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이거 봐요, 당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 한 번 보실래요?’라고 들이밀 수 있는 책을 만나면 저는 너무 기쁘고 흥분됩니다. 그간 많이 추천했던 책은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과 애니 그레이스의 ’벌거벗은 마음‘인데요, 이 책들의 아쉬운 점은 ’외국책‘이라는 겁니다. 그간 한국에서 ’제가 중독으로 이만저만 고생했는데, 지금은 이만저만 좀 괜찮아지고 있거든요‘라는 경험담을 엮은 책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제가 클래스 101에서 강의를 론칭했겠습니까?) 책을 읽는 내내 추천해드리고 싶은 환자분들 얼굴이 떠올라 얼마나 설렜는지 모릅니다.


  오늘 추천드릴 이 책은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로서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음주에 잠식되어 겨우 라면 사 먹을 돈도 있을까 말까 한 정도까지 음주 문제가 심각했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낸 한 여성이 자신의 경험담을 엮은 책입니다. ‘고도 적응형’은 영어로 high-functioning입니다. 돈도 벌고 자기 일도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사람이 중독인지 잘 모른다는 뜻입니다. ‘네가 정말?’ 같은 말을 들을 것 같은, 겉으로는 젊고 멋진 여성이 술로 인해 썩어 문드러져가는 내면을 억지로 부여잡고 15년을 살아오다가 그 늪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강의 준비를 하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강의에서도 꼭 소개하고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렸을 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저자의 표현이 살아있고 진실되며 글솜씨도 뛰어나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번역서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매끄럽고 지금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중독치료가 ’완료‘된다고 착각하는 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매우 강력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와 이야기를 꼭 나눠보고 싶습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에게도 나눠드릴 숨은 지혜가 있을지도 궁금하고, 책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디테일들도 너무 궁금하거든요.


  ‘혹시 나도 중독일까?‘라는 고민이 있거나, ’중독인데 뭐 어쩌라고!‘라는 마음이거나, ’중독인 건 알겠는데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답답함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막간 홍보]

  아직 병원을 방문할 용기는 없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저의 ‘중독학’ 강의도 도움이 되실 거예요!


  지금 ‘이론편(중독이 대체 뭘까? 나도 중독일까?)‘이 론칭되어 있습니다. 6월 말에 회복편(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가 론칭됩니다.

강의 초대 링크: https://101creator.page.link/cgB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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