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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 상연되는 영화에 관한 영화 _ A
극장의 문을 나서면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민영과 우진을 제외하고, 극장의 모두는 잠이 들어 있다. 이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면 민영과 우진은 헤어질 것이다. 흘러가는 영화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둘의 헤어짐도 막을 수 없다. 모든 영화에는 결말이 있다. 그러나 영화의 끝을 확인한 관객은 극장의 문을 나서는 동시에 자신의 기억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만의 기억에 기대어 영화를 다시 플레이한다. 민영도 마찬가지다. 우진과 마지막 날 본 <미로 위의 산책>을 여든아홉 번째쯤 되풀이하면서 민영은 영화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터널을 기점으로 영화와 영화 속 영화 그리고 영화 현장 내외부의 경계를 허물면서 중첩하는 이 영화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지나가 버리는 순간을 속도로 감각하도록 하는 것이 영화의 속성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 속 세계에 동행하게 되면 그 세계에는 아무도 없는 길, 허물어져서 골조만 남은 건물, 사라져 버리고 마는 편지, 행위뿐인 산책, 섭리를 어긋나는 계절 감각, 부재하는 세계의 참조성 속에 남겨진 사람이 있다. 민영은 우진과 헤어진 뒤, 우진의 집 앞에서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캄캄한 밤, 유일하게 빛이 들어온 직사각형의 작은 창문에 빛이 들어오고, 꺼지는 것을 지켜보는 민영은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진 후에도 한참을 스크린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관객처럼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아 쇼트에서 빠져나가면 재처럼 흩뿌려지는 영화 속 인물과 동행하고 영화를 만드는 현장을 꿈꾸듯 담은 이 영화는 오롯한 영화적 순간을 감각하게 하는 영화에 관한 영화다.
생으로 소환하는 영화에 관하여 _ 난둘
보통 한 영화의 등장인물은 그 영화에 영원히 갇혀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같은 표정과 같은 대사를 반복하며. 그러나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의 주인공은 숫자를 센다. 상영이 반복될수록 커지는 숫자는 그녀가 감상하는 <미로 위의 산책> 속 인물이 반복의 굴레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본래 생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은 반복을 기반으로 하지만 날마다의 차이를 가진다. 그러나 <미로 위의 산책> 속 주인공의 삶은 언제나 그대로다.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똑같은 주인공의 삶을 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는 <미로 위의 산책>을 촬영한 배우를 영화 속 영화인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의 주인공으로 소환한다.
이제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그 둘은 손을 잡고 폐건물로 향한다. 그곳엔 주인공이 쓴 편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주인공에게 편지를 남자친구에게 전해 달라 부탁한다. 그리고 둘은 눈을 맞으며 잠이 든다.
두 명의 주인공이 서로 어떤 관계임은 중요하지 않다. 이 편지를 누가 썼는지 또한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이 두 주인공은 서로 같지만 다른 삶을 사는 듯 보인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의 주인공은 영화가 끝난 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의 주인공은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 길게 등장하는 공간들은 언제나 그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로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이렇게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는 두 주인공의 반복 속에서 차이를 갖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영화 속 인물의 삶은 가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한 명의 주인공만 남아 있다. 주인공은 다시 숫자를 세고, 숫자는 1로 돌아간다. 이 숫자는 다시 커지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일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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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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