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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감독 : 오민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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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소행성과 함께하는 월간감독 상영작의 비평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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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의미 _ 난둘


<유령의 해>는 조갑상의 소설 『밤의 눈』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혼재한다고 한다. 현재와 과거의 시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오간다는 뜻일 테다. 나는 그 소설을 읽지 못했다. <유령의 해>를 바라본다.

장면들은 반복된다. 반복되는 일상이 저마다의 차이를 가지는 것처럼 반복된다. 사람 몸에 각질이 떨어져 쌓이듯 영화에 반복되는 장면들이 쌓인다. 영화는 사람의 각질처럼 ‘청소’되지 않는다. 마치 과거는 ‘청산’되지 않는 거라며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유령(이라고 칭하겠다)은 영화를 바라보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티브이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스크린을 바라본다. 네모난 창을 통해 다른 시공간이 펼쳐진다. 하지만 다른 시공간은 결국 같은 시공간이다. ‘다르다’는 그때의 역사가 지금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소망이다. 이때 누군가는 영화일까, 아니면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일까, 아니면 유령이 말하는 과거일까, 아니면 유령이 돌아다니는 공간에 흩뿌려진 먼지들일까.

유령은 티브이를 통해 깊은 터널로 떨어진다. 그 터널은 마치 동굴과 같다. 동굴은 과거의 보존이자 깊은 무지이다. 인공적인 조명이 쏘아진 동굴은 살아있는 유령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조명이 꺼지면 사라질 그 유령의 그림자는 조명이 꺼지면 사라질 과거이다. 우리는 그림자를 실체라고 믿어야 한다…. 

부산타워가 보이는 방으로 돌아온 유령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이 영화는 우리 앞에 펼쳐진 현재이자-과거이자-미래를 읊조린다. 영화를 찍기 위해 부산에 도착한 배우의 독백처럼. 끊임없이 들려오는 쇤베르크의 음악처럼.

영명에게, 영명으로부터 _ A


까무룩 잊혀진 유령에게 서신을 보낸다. 편지는 언제나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달도 뜨지 않은 밤, 밤의 눈은 세워진 날부터 그곳에 우뚝하니 서 ‘영원히 밝은' 영명(英明)이 죽던 그날 밤과 수많은 밤을 지켜보았을 테다. 부산에서 열네 번째 밤을 보내는 승미의 시야 어디에나 부산타워가 드리워 있듯 말이다. 사막의 피라미드가 무한한 모래에 유한함을 만들듯, <유령의 해>는 무한한 세계와 역사의 유한함 언저리에서 물의 흔적을 지우면서도 아가미를 달고 바닷속을 헤매는 듯한 감각을 만든다. 피라미드는 사막의 점을 찍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오민욱의 세계에서 영화는 유한하게 여겨지는 시간과 점의 역사를 무한함으로 펼쳐내고자 하는 자조적이고도 치열한 믿음처럼 보인다. 바닷속 세계는 너무 넓어 고여 있는 듯 보이고, 욕조의 물은 너무 좁아 흘러넘치는 듯 보인다. 승미가 소설 속 공간을 걸어 다니고, 건조하게 소설을 낭독하는 순간은 유령의 다성적인 목소리가 복화술처럼 불려 와 제의적 순간이 된다. 네거티브 필름과 같은 효과는 부산 바다의 영험함을 끊임없이 유화시킨다. 원형의 계단을 지나 부산의 모퉁이 극장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역사와 군중의 푸티지는 네모난 사각형 안에서 망각된다. 무용한 시간과 거닒 속에서 잠들어있는 승미에게 울리는 차기 대통령 선거의 여론조사는 언제나 반복되는 역사의 감각과 관습을 신경질적으로 깨운다.  

앞서 편지는 언제나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 말했다. 이 라캉의 명제는 지젝을 통해 그렇다면 편지는 왜 항상 목적지에 도착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변형된다. 지젝의 논의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편지는 의미화할 수 없는 공백을 포함하고 있기에 편지는 설령 주인에게 도착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나 도착한다. 오민욱은 원작의 소설가인 조갑상에게 시간차를 두고 서신을 보낸다. 처음 보낸 서신의 답이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불친절하고도 일방향적인 공백과 얼룩으로 뒤덮인 그의 서신은 네모난 스크린의 영화라는 재현을 통해 망각을 경유하여 지금 우리라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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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해>(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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