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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03. 2021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은유, 『쓰기의 말들』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은 작가였다. 어릴 때 단골 질문인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으레 어른들이 물으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작가요'라고 답하곤 했다. 교내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탄 것만으로 비범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과 환상에 빠져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어린이의 패기가 가히 존경스럽다. 


고등학교 초반까지만 해도 내 꿈엔 변함이 없었고 출판기념행사에서 사인까지 받아온 '황홀한 글 감옥'을 읽으면서 나도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글을 쓰리라 비장한 다짐을 했던 것도 같다. 예술고등학교의 문창과를 다닌 것도 아니었기에 고1 때 몰래 지원해본 마로니에 백일장 본선에 진출한 것만으로 엄청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당연히 본선 수상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역시도 다 추억이다. 이때 쓴 글을 지금도 가지고 있더라면 좋을 텐데. 평범한 가장인 직장인 A 씨가 바람에 흔들리는 본인 넥타이를 보며 회상하는 내용이었던 막연한 기억만 난다. 제목에 분명히 넥타이를 집어넣었던 것 같긴 한데. 세세한 기억은 모두 사라졌다. 대학교 때도 학보사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쓰는 일에 대한 일종의 아쉬움을 풀기도 했다.


현재 예술과는 다소 먼 전공의 길을 가고 있지만, 결국 연구자의 삶도 '글쓰기'를 떼어 놓고는 말할 수 없다. 연구까지 갈 것도 없이 회사에서, 그냥 내 일상 속에서 하는 일만 해도 결국 모든 것은 글쓰기로 귀결된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결국 '잘 쓰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기술적 글쓰기에 대한 책이나 자기 계발서의 향기를 풍기는 책들은 굳이 찾아서 읽지도 선호하지도 않았다. 『쓰기의 말들』을 추천받았을 때도 으레 그냥 비슷비슷한 글쓰기 책이 아닌가 하는 거부감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편견이 모두 부서졌다. 복잡하고 현학적인 문장 없이도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험으로 무수한 독자에게 보편적인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글 아닐까. 같은 작가의 책은 아니지만 한 출판사에서 시리즈처럼 기획해서 나온 『읽기의 말들』까지 연이어 읽게 되었을 정도로 단숨에 이 책의 매력에 빠졌다. 



글쓰기는 감각의 문제다. 남의 정신에 익숙해질수록 자기 정신은 낯설어 보인다. 들쑥날쑥한 자기 생각을 붙들고 다듬기보다 이미 검증된 남의 생각을 적당히 흉내 내는 글쓰기라면 나는 말리고 싶은 것이다.


                                                                                                        출처: 은유, 『쓰기의 말들』 



얼핏 그의 반복 행위는 아무런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그게 그거 같았다. 그런데 그의 행위는 방금 전까지 내가 하던 짓 아닌가... 그 망설임들로 꽉 찬 시간들.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거기서 막 빠져나온 나에게 그의 동작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어 내기. 무모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 기르기.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출처: 은유, 『쓰기의 말들』 


코로나 핑계를 대보자면, 갑자기 생긴 유예된 1년 동안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을 느끼곤 했다. 내 생각보다는 어디에서 주워들은 얘기, 신문이나 sns에서 본 내용 등등 참신할 것 하나 없는 글만 쓰고 있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그 어떤 글조차도 쓰고 있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도 일상의 근력이 필요한 시기인데도 말이다. 이때 만난 쓰기의 말들이 새로운 자극과 뭐라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주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무의미의 반복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해 다시 글을 써본다.


#100일 글쓰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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