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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05. 2021

Hate is a Virus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위험 속에 산다. 위험하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어떤 위험은 명백히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바깥에 있다. 일어날 위험에 대한 대비와 일어난 사고에 대한 대책을 함께 마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유 아닌가.

                                                                                                       출처: 홍은전, 『그냥, 사람』


코로나 전염만큼이나 빠르게 혐오와 차별이 확산되는 2021년이 도래했다. 해외에 잠깐이라도 거주해본 사람 중 '사소'하고 '일상'적인 인종차별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수준의 폭력과 살인이 아니어도, 교묘하고 구조적으로 행해지는 차별이 아닐지라도 '가벼운' 수준의 조롱과 혐오 표현은 코로나 이전에도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한 번은 초등학생 아이가 차이니즈 레스토랑 메뉴를 줄줄 외며 프라이드 라이스, 만다린 오렌지 치킨이라고 외친 적이 있는데 니하오, 칭챙총 같은 타격감 제로인 모욕보다는 창의적이네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이후 아시안 혐오 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사실이고 조명되지 않았지만 항상 존재했던 차별들이 이제야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21세기에 그냥 집 앞 산책을 하다, 아침 출근을 하던 길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칼에 찔리고 주먹에 맞고 차에 치여 명을 달리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선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다.


연일 터지는 사건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차에 『 그냥, 사람』책을 읽게 됐다. 여러 이슈가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장애인의 이동권과 탈시설에 관한 부분이 가장 깊게 와서 박혔다. 비장애인인 다수로 평생을 살아온 나는, 휠체어를 쓰는 사람은 고속버스에 탈 수 없다는 걸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에 너무나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시위를 하며 한강철교를 기어서 가기도 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그 처절함과 간절함은 감히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작년만 해도 발목 골절로 몇 달간 깁스에 목발을 짚고 출퇴근하느라 고생을 했으면서도, 그때 잠깐뿐 다시 또 비장애인으로서의 편한 일상을 누리며 그 기억은 그냥 다 잊은 듯이 살아갔다.


타인의 곤란함은 대체로 사소한 것이거나, 조금 심각하지만 스스로 불러온 것이거나, 어쩔 수 없었더라도 내게는 닥치지 않을 일이다. 사회에서 흔히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욱 그렇다.

                                                                                                       출처: 홍은전, 『그냥, 사람』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 동양인 혐오범죄냐 아니냐 논쟁이 붙은 것도 어쩔 수 없지만 내게는 닥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일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니 동양인은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며 사는 게 당연하다는 사소한 생각에서 기인한 것일까?  오늘 아침에는 마약으로 수감된 적 있는 한 범죄자가 길을 가던 동양인을 이유 없이 살해했다는 또 다른 기사 제목을 봤다. 끔찍해서 제목만 보고 그 내용은 클릭해보지 않았다. 가해자 개개인의 문제도 분명 존재하지만, 가해자가 단순히 '마약중독자'여서 '성 중독자' 여서라는 이유로 명백한 인종차별의 죄목을 지울 수는 없다. 언어적 모욕과 눈찢기 같은 조롱을 가벼운 일 또는 농담으로 인용해주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지가 결국 동양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샵만 찾아다니며 총을 쏘게 하는 그 날에 이르게 했다.


위로를 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응원하기 위해선 그들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출처: 홍은전, 『그냥, 사람』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부채의식을 느낌과 동시에 작은 희망을 느꼈다. 내가 뭐라고 현장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기록한 글을 보며 희망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지만, 다르게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책 속에 나오는 모든 이슈와 안건에 똑같은 입장을 취하는 게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그래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게으른 안도감과 그럼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후원하기, 정책 입안자에게 건의하기, 그리고 또 어떤 일을 내가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살면서 계속 생각해볼 문제다. 너무 거창하게 설교적 마무리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구구절절 쓰다보니 결국 이렇게 됐다.


장애인에게 살기 좋은 세상은 비장애인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이다. 동양인이 살기 좋은 세상은 그 어떤 인종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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