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우리 홍지님은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셨을 거 같아요. 어쩜 꽃을 저리 정직하게 꽂으셨을까?"
둘째 날,
"홍지님 꽃꽂이는 영국스타일이네."
셋째 날,
"홍지님 오늘도 참 단정하게 꽂으셨네요. 용기 내서 더 과감하게 해 보세요."
눈치가 없는 난, 선생님의 숨은 의도를 세 번째 수업에서야 알아차렸다.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항상 선생님의 손으로 내 꽃바구니를 재창조하시더라니. '정직하게', '영국스타일', '단정하게'는 틀렸다는 말이었구나.
'다음엔 어떻게 꽂아야 하나.' '큰 꽃은 조금 아래에 꽂으라고 했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저 꽃이 좋아서 시작했다. 나만의 작은 정원을 만들 듯 즐거웠다. 그러나 이젠 답을 맞혀야 하는 시험처럼 느껴졌다. 내 돈을 내고 취미로 들어간 꽃꽂이 클래스에서 정답지가 있는 꽃꽂이를 하려니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기준에 맞춰 꽂아야 하는 꽃은 점점 숙제처럼 다가왔고 난 남은 수업을 취소했다.
(물론 전문가과정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근처 꽃집에서 좋아하는 들꽃을 사 왔다. 잔잔하고 소박한 들꽃은 화려한 장미들 사이에 숨어 있는 진주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꽂은 내 꽃들은 작고 아늑한 우리 집에 포근하게 안기듯 편안해 보였다.
도서관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대출해서 읽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방법들을 내 글 안에 녹여내 좀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어이가 없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글쓰기에 재미를 잃어갔다. 책을 읽는 동안 난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내가 쓴 글들은 모두 글쓰기정답을 피해 간 0점짜리 시험지였으니까.
좋아하는 꽃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꽂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전문가가 보면 경악할 정도로 엉망이었겠지만 내가 보기엔 더없이 사랑스럽고 예뻤다. 지금의 내 글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정답에서는 많이 벗어났지만 글을 쓰며 느꼈던 열정과 즐거움을 생각하니 내 글이 다시 사랑스워 보였다. 잘 쓰려면 꾸준히 써야 하고 계속 쓰려면 글쓰기 자체의 즐거움을 잊지 않도록 해야한다.
고작 글 몇 개 써놓고 참 무식하고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민망한 용기로 매일 쓰자. 계속 쓰다 보면 꽃으로 나만의 정원을 만들었듯, 나의 개성이 담긴 고유한 글도 쓸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