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가 다니는 유치원은 정문에서 인터폰으로 하원을 알리는 시스템이다. 유치원 정문 앞에는 인터폰으로 하원을 알린 몇몇 엄마들이 낯이 설은 인사를 주고받고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4시쯤 유치원 앞에 모인 엄마들은 보통 파트타임 알바를 하거나 전업맘이다. 나 역시 아이를 낳은 후 줄곧 육아에 전념하는 전업주부다.
"남편이 너희들 이름을 너무 헷갈려해서 A는 선생님 친구라고 하고, B는 점장친구라고 하고, C는 간호사라고 하고, 여니는 래미안아파트 사는 애라고 말하잖아. 그래야 알아들어~~"
나는 래미안아파트구나. 나를 수식할 만한 단어는 경단녀, 전업주부, 육아맘 이 3가지 의외에는 마틸다 엄마뿐이었다. 이제는 래미안아파트라는 수식어까지 갖게 되었다. 여태까지 숱한 별명을 들어봤지만 이렇게 서글픈 별명은 처음이다.
"엄마는 하고 싶었던 일은 뭐야?"
마틸다가 물었다.
"글쎄, 화가도 하고 싶었고 선생님도 하고 싶었고~"
대충 대답하고는 하고 있는 설거지에 열중했다.
"그런데 많은 일 중에 왜 엄마라는 직업을 선택했어?"
길을 가다 외국인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어온 듯 당황스러워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엄마'는 아이를 낳으면 자연히 불리게 되는 호칭일 뿐인데 엄마라는 직업이라니 참신하면서도 당혹스러웠다.
"난 어른이 되면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 엄마처럼 많이 사랑해 주고 놀아주는 엄마가 될 거야."
마음을 울린 그 한마디에 눈물이 서렸다.
맹목적인 사랑과 책임으로 아이를 키워내는 찬란한 위대함. 바로 육아다. 알고는 있지만, 누구나 하는 육아이기에 내 노력은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겼었다. 이 세상에는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 슈퍼우먼들도 많기에.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럽게 커가는 네 곁에서 너를 바라보며 웃어주는 것, 너에게 정성 깃든 삼시 세끼를 챙겨주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행복한 표정으로 너를 안아주는 것. 나는 이토록 귀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엄마'였다. 네가 내게 준 '엄마라는 직업'안에서 만들어 갈 내일을 생각하니, 새벽에 내리는 모닝커피만큼이나 오늘 하루가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