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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책방 Mar 11. 2024

착하고 여리면 바보가 되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착하고 여리다'라는 말로 모든 게 표현되는 사람. 나의 부모님이다. 꼭 닮은 둘이 만나 만들어낸 나는 '순두부'다. 쉽게 뭉개지고 부서지는 그런 존재.




착한 사람은 바보라 불리는 세상, 오죽하면 상처받는 호구보다 상처 주는 썅년이 낫다는 말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다. 선한 마음을 이용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에 손해만 보다 결국 가족을 힘들게 만드는 모습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야."

아빠가 자주 하시는 말이다. 그 좋은 날이란 소위 말해 로또가 되거나 크루즈 여행을 하겠다는 포부도 아닌 마음 편하게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때를 말한다. 그 시간조차 부모님께는 아직 사치이다.




"여니야 오늘 치킨 먹을래?"

이건 반갑지 않은 신호다. 힘든 일이 생겨서 괴로울 때 나를 부르는 암호랄까. 고달픈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이 왜 나일까. 순두부의 존재를 숨기고 고작 '부침 두부'정도의 가면을 쓴 채, 오늘도 부모님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내게 너무 여린 그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 딸이랑 이야기를 해야 마음이 편해져."




"야 우 엄마는 그런 일로 까딱없어~"

"누가 우리 아빠를 이기겠냐. 어디 가서 질 사람이 아니야."

어떤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식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강한 부모님을 둔 사람들이 부러웠다. '부침 두부'의 가면이 점점 힘에 부쳤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사랑이를 보러 오신다. 하나밖에 없는 손녀이기도 하지만 워낙 정이 많으신 분들이니까. 사랑이가 조리원에 있을 때도 매일 찾아온 건 우리 부모님 밖에 없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기질의 사랑이를 잘 키울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이었다. 몇 시간씩 인형 놀이를 해주는 할머니, 한 여름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놀아주는 할아버지.

"사랑아, 너는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분이 계셔서~"




"엄마가 더 좋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엄마아빠가 있는 거잖아."




일곱 살인 네가 아는 걸 어른인 나는 몰랐다. 내게 얼마나 좋은 부모님이 계셨는지 말이다. 더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나를 돌보아 주셨던 어린 시절. 사람을 대하는 정직한 예의를 알려주신 분. 올바르고 바르게 자라도록 본보기가 되어 주셨던 지난날, 사실 선한 마음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해 주신 내겐 너무 고마운 부모님.

내가 가진 원망의 마음 역시, 그들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느꼈다. 다르게 표현하자. 걱정과 불안으로 탓하는 대신 함께 이고 지고 나누면 아빠가 말한 그 '좋은 날'이 머지 않아 올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 비로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헨리 워드 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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