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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Apr 02. 2024

10년 만에 첫 가족해외여행을 가다!

예민한 울보 딸, 주말에도 출근하는 바쁜 남편,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나. 이 완벽한 쓰리 콤보 덕분에 우리 가족은 ‘반강제 국내여행 마니아’로 자리 잡았다.



“엄마, 우리 반 민지 알지? 걔네 이모가 미국에 살아서 겨울방학에 미국 간대~ 나도 영어 쓰는 나라로 여행 가고 싶어.”

딸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남편은 시간이 없고, 나는 비행기를 무서워하는데, 영어 쓰는 나라라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괌이었다. 그렇게 10년 만에, 우리 가족은 첫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이 온몸을 감쌌다. 마지막으로 마음 놓고 햇볕을 즐긴 게 언제였던가.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그런 시간이 없었다. 그저 엄마로, 아내로 살아내느라 늘 바빴다. 이번만큼은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내에서 최고의 호텔과 렌터카를 예약했다. 이 여행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가족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돌아갈 때 비행기가 많이 흔들리면 어쩌지? 아이가 낯선 음식을 못 먹으면? 갑작스러운 사고라도 나면?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만들어낸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나는 내가 쌓은 벽 안에 갇혀 있었다.



괌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깨달았다. 그 벽은 나를 지키는 보호막이 아니라,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장애물이었다. 잠시나마 용기를 내어 낮은 허들 하나를 넘은 기분이었다. 덕분에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엄마, 괌 진짜 멋지다! 우리 매년 여행 가면 안 돼?”
딸은 여행 내내 해맑은 얼굴로 웃었다. 그 웃음 하나만으로도 이 모든 노력이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평소라면 주말에도 바쁜 남편이 이번만큼은 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보낸 건 처음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 앞으로 매년 한 번씩 이렇게 가족 여행을 가자.”

그 말이 참 좋았다. 예전에는 이런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매년 여행이라니, 어떻게 가능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괌에서의 며칠은 단순히 좋은 추억을 넘어, 우리 가족에게 작은 쉼표 같은 시간이었으니까. 각자 바쁜 일상 속에서 조금씩 멀어졌던 우리가, 다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햇살 가득한 괌의 기억은 이번 겨울을 유난히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 동안 나를 괴롭혔던 걱정들조차 지금은 멀게 느껴진다. 모든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걸 잠시나마 옆으로 밀어두고 즐길 수 있는 내가 조금은 대견했다.



다음 여행은 어디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 남긴 따뜻함은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그걸 떠올리며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남편아, 약속했으니 힘내서 돈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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