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내 앞을 느긋하게 가로막았다. 솔직히, 난 동물하고 교감하는 데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사람하고도 그렇게 친해지기 쉬운 성격은 아니고. 그런데 이 고양이, 참 묘하게 나를 신경 쓰는 눈치다.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알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내 옆에 와서 털썩 앉았다. '왜 이러는 거지?' 싶었지만, 나도 어쩌다 보니 같이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이 고양이랑 함께 있는 게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요즘 내 상태를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속에 짐이 참 많다.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고, 사는 게 어딘가 자꾸 미끄러지는 느낌? 그런데 이 길고양이가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라도 있는 것처럼 다가와서 내 옆에 앉아 있으니, 신기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들이 싹 사라졌다. 마치 이 녀석이 내 심리 상담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물론, 고양이가 내 상태를 분석해 줄 리도 없고, 그런 걸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냥 이렇게 나와 함께 조용히 있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사람에게도 이런 고양이 같은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복잡한 말 대신,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줄 수 있는 사람. 날카로운 충고나 따뜻한 격려의 말보다도, 그저 함께 있어주는 온기.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야말로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길고양이 하나가 내 옆에 잠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나는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안정제도 심리상담도 아닌, 내 곁의 온기였을지도.
고양이가 떠나고 나서도 그 순간이 자꾸 떠올랐다. 뭐, 딱히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다. 고양이가 내 고민을 들어주거나, 해결책을 알려준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옆에 조용히 있어 준 것뿐인데도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나중에서야 알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때로는 복잡한 위로나 조언이 아니라,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난 그날의 고양이와의 만남을 오래 기억하려 한다.
고양이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