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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less Nov 07. 2022

첫번째 파고다

미얀마 양곤의 심장 술리 파고다 

여행을 떠나면 유독 성당이나 교회, 사찰에 집착한다. 교토에 가면 꼭 료안지에 들러야 한다. 필리핀에서는 에르미타교회에 다니다 동료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에르미타는 안전하지 않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포르투에서는 성당을 보느라 옆길로 새기 일쑤였고,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미사에 능청스럽게 참석했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성당에서 성당으로 돌아다녔고, 박타푸르와 우붓에서는 새벽부터 힌두사원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안갔었네 생각하다보니, 그럼 그렇지, 예원을 세바퀴 쯤 돌았었다. 


종교시설에 집착하는 것은, 신을 모신 곳이야말로 사람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여러 사원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은 순수 그 자체였고, 그 절실한 마음이 전해져올때면 같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한편, 종교시설만큼 그 곳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곳도 없는 것 같다.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담아내는 곳일테니. 그런 점에서 미얀마는 노다지같은 곳이었다. ‘천개의 불탑’ 바간이 아니어도 구글맵을 통해 미얀마 전역에 있는 사원을 찾아보면서 눈을 반짝였었다. 


나의 첫번째 파고다는 술리가 되었다. 술리는 슈웨다곤보다 2,500년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얀마인들은 술리를 양곤의 심장으로 생각한다는데, 술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잇는 가장 번화한 거리가 조성되었고, 북으로는 양곤중앙역과 보족 아웅산 시장, 남으로는 양곤강 선착장이 위치해있다. 술리는 1988년의 민중항쟁, 2007년의 반정부시위의 거점이었다니, 명실상부한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라고 보는게 맞겠다. 역시 그렇다면 술리부터. 라고 생각했다.

술리는 명성에 비해서는 크지 않은 규모, 조금은 낡아보이는 외관의 파고다였다. 미얀마의 사원들은 입구가 동, 서, 남, 북으로 나있는데, 내가 들어간 곳은 육교에서 곧장 경내로 들어가는 남쪽문이었다. 보통은 수많은 상점을 지나서야 경내에 들어설 수 있다. 입구의 표지판에는 탑 차림은 안됨, 핫팬츠 안됨, 신발을 신으면 안됨 등 이러저러한 금지사항들이 써있었다. 반바지가 안된다는 표시는 없었다. 그런가, 특별히 론지를 입지 않아도 되는건가. 느긋한 기분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의 젊은 아가씨가 ‘외국인은 티켓을 구입해야 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내밀었다. 아, 말로만 듣던 외국인 요금인가, 생각을 하며 돈을 지불하자 1회권 티켓이 건네져왔다. 매번 들어갈때마다 사라는 거군. 아가씨는 내 신발을 보더니 자기가 맡아주겠다며 한쪽에 두라고 했다. 고마워요. 한쪽으로 밀어두고 경내로 들어갔다. 

눈앞으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황금 파고다를 중심으로 수많은 부처와 신상들이 모셔져있었다. 가루다와 나가, 하누만 등 힌두의 신들도 보였다. 동서남북 네 방향에 위치한 당에는 어딘지 세속적인 이미지의 부처가 모셔져있었는데, 광이라도 낸 것 같은 금빛에 네온사인 장식을 볼 수 있었다. 목에는 염주로부터 실과 꽃까지 - 정말 온갖 것들이 걸려있었고, 부처 앞에는 불전함이 놓여있었다. 흔히 ‘사원’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기보다 우리의 서낭당이나 법당에 가까워보였다. 

잠시 혼란스러워하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이 실내에 익숙해질 즈음 사람들의 독경소리, 절을 하며 나는 규칙적인 소리, 들어오고 물러나는 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야옹, 어디선가 고양이 한마리가 나타났다. 예를 올리던 중년의 남자는 가방에서 밥을 꺼내 고양이에게 나눠줬다. 남자는 다시 예를 올리기 시작했고 얌전히 밥을 다 먹은 고양이는 남자의 옆에 앉아 부처를 바라봤다. 너도 경배하는거니. 고양이를 쓰다듬어주니 골골 소리가 들려왔다. 부처 앞에서 밥을 나누고 부처를 바라보는 모습은 생경하면서 뭉클했다. 경건함보다는 나눔을 선택하는 걸까. 

자리에서 일어나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황금의 나라’답게 부처도, 신상들도, 여러 장식들도 화려한 금으로 장식되어있었지만, 차라리 소박하고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종교시설보다는 일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인들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어느새 날이 화창하게 개고 있었다. 신발을 찾고, 첫 파고다 - 술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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