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버디켈에서 만난 아이들
벌써 오래전 일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자원봉사단을 모집했는데, 무려 해외봉사였다. 앞뒤 안재고 지원했고, 운좋게도 봉사단에 뽑혔다. 봉사지는 네팔 카트만두 남쪽의 버디켈. 카스트에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빠하리족의 거주구역이었다. 한 NGO가 이곳에 호스텔과 학교를 설립했고, 70여 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자원봉사단은 영어, 미술, 체육을 포함하는 교육봉사와 영어도서관 건립을 진행했다.
한국으로부터 6시간의 비행 후,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버디켈은 작은 마을이었다. 진흙탕을 걸어 호스텔 입구에 도착하자, 말썽 깨나 부릴 것 같은 개구장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호스텔의 아이들은 고아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 또는 폭력 가정에서 구출된 아이들이라고 했는데, 그런 배경을 가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밝은 얼굴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녀석들과 손짓 발짓으로 인사하고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호스텔의 아침은 체조로 시작됐다. 함께 몸을 움직이고 난 뒤 얼굴을 씻고 양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쉬다가' 학교에 가는 일과였다. 그런데, 이 '쉬는' 모습을 보다가 어쩐지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네팔에서 '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실제로 '쉬는' 아이들은 약 3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우리는 '쉰다'고 하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던가, 음악을 듣는다던가, 심할 때면 책을 본다. 즉, '스트레스가 덜 한 일을 한다.' 그래서 진짜로 쉬는 모습을 보고는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저게 쉬는 것이구나. 사실 우리는 쉬어 본 적이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따라 도착한 학교는 빨간 벽돌의 작고 예쁜 건물과 넓은 운동장을 갖춘 곳이었다. 아이들은 북소리에 맞춰 조례를 시작했는데, 어딘지 영국 군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언젠가 TV에서 본 인도의 학교들도 이렇게 조례를 했었다.
아침 기도보다 카메라를 든 외국인에 더 관심을 보인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수업이 시작된 학교를 돌아다녔다.
운동회도 열렸다. 페이스페인팅까지 한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건강한 활기가 남달랐다.
젊은 선생님들은 아이들보다 더 운동회를 좋아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만난 아이들.
꼬마숙녀들이 포즈를 취해줬다.
학교 최강이라는 악동 콤비도 포즈를 취해줬다.
언제부터인지 녀석들은 나를 '쿠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네팔 선생님들께 여쭤보니 '곰'이라는 뜻이란다. 이녀석들 이름을 잘도 짓는군. 꼬마녀석은 자기가 만든 풍선을 주면서 쿠마, 쿠마 라고 했었다.
자원봉사를 마칠 때 쯤, 네팔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하셨다. 네팔을 품은 사람들을 종종 봤는데, 어쩌면 당신도 그럴 것 같다고. 그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다. 그 후 네팔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게 됐고, 언제라도 돌아가야 할 곳으로 기억하게 됐다. 그 후 다시 네팔을 찾았지만, 정작 네팔 대지진 이후로는 가보지 못했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조만간 네팔의 하늘 아래를 걷게 될 것 같다. 파랗던 하늘과 그 위에 떠있던 산들, 무엇보다 네팔의 아이들이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