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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이 Jan 15. 2024

문지방에 서서 벌서기

#고민상담


결혼한지는 5년이 됐고, 아기는 한국나이로 3살입니다. 남편과는 잘 지내다가 아기가 태어나고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또 그런대로 잘 지내요. 저는 결혼 전 프리랜서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코로나도 있었고 그 뒤에는 또 아기도 태어났고 하다보니 지금은 한국에 정착해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문득문득 답답합니다. 남편과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봐도 여행 스타일이 너무 안 맞아서 자주 싸우고 불편해요.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은데 아이가 있다 보니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1시간 넘게 논쟁을 하기도 했어요. 제가 언젠가 유학가고 싶어하는 건 남편도 아는 바인데, 막연히 온 가족이 같이 떠날 거라고 생각을 해왔던 거죠. 저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영 상황이 안 되면 나 혼자라도 가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은 너무 무책임한 말이 아니냐고 해서 얘기가 길어졌는데... 긴긴 이야기 끝에 저도 기혼자로서 조금 무책임한 발언이었나 싶어서 사과하고 마무리가 되긴 했어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 되새김질을 하는데도 속이 답답해요. 당장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가정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을 뿐인데... 다만 남편 때문에, 아이 때문에, 상황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혼자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였는데 말이죠.


오늘남편과 점심으로 카레우동을 먹으러 가게 됐어요. 카레우동을 보자 남편은 일본여행에서 먹었던 수프카레가 참 맛있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식당을 떠올리자마자 남편이 여기 별론거 같다고, 아기 데리고 웨이팅하기 싫다고 다른 데 가자고 식당 안에 들어오지도 않고 굳은 표정으로 밖에 서 있었던 생각부터 나더라고요. 저 역시 낯선 동네에 처음 간 식당이고 식당이 많지 않은 동네라 갑자기 달리 갈 곳을 찾을 수도 없어서 일단 안 되는 일본어로 웨이팅부터 걸고 구글맵을 뒤져봤는데 달리 갈 데가 없더라고요. 결국 남편 눈치 보고 달래서 그 식당에서 먹었는데 남편은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는 거에요. 친정엄마도 모시고 간 여행이었는데 엄마도 사위 눈치 보시고 저는 중간에서 곤란하고 진땀 뺐던 기억만 있는데...


배우자는 인생의 로또라고, 절대 안 맞는다는 농담도 있지만, 남편과 성향이 많이 달라서 보완이 된다고 생각할때도 있지만, 안 맞는 사람과 결혼을 잘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문득문득 괴롭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선택에 대해서 마음껏 후회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시원하게 납득도 안되고 문지방에 서서 벌서는 기분으로 지낸지가 오래 됐네요. 아이 때문에 그냥저냥 평화를 지키며 지내지만 제가 그리는 인생의 미래에는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어요. (아이는 물론 다 커서 자기 인생 살아갈 거니까 없는 거고요, 남편은 왜 없는지 모르겠네요 ㅋ) 그냥 육아가 힘들어서 드는 생각일까요? 과거의 어느 시점에 저는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같은데... 요즘은 자꾸만 자꾸만 탈출하고 싶어집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 풀어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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