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인간 Oct 27. 2023

슬라임이었다가 캥거루였다가 하루살이


나는

아침에는 슬라임

점심에는 캥거루

저녁에는 하루살이

이다.




  

  앗, 7시 40분! 이제는 진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서 초등학생인 겨울이를 깨우러 갔습니다.

  "꽁지야, 이제 진짜 진짜 진짜 일어나야 해."

  엄마인 저는 얼른 일어나길 보채며 조급해하는데 꽁지는 평온한 말투로 귀여운 말을 건넵니다.

  "나는 아침에는 슬라임, 점심에는 캥거루, 저녁에는 하루살이야."

  아고 귀여워라. 일어나라고 했더니 귀여운 동시 한 편을 지어 냅니다. 겨울이는 아침에 되면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자꾸만 눕고 싶어 져서 슬라임이고, 낮에는 학교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녀서 캥거루, 저녁에 되면 오늘 하루를 보내줘야 하기 때문에 하루살이라고 합니다. (이 기특한 어린이를 제가 낳았다니 감동입니다.)


  저는 무엇일까요? 곰곰이 무언가에 저를 빗대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쉽지 않네요. 열 살인 겨울이는 이렇게 자신을 잘 표현했는데, 오히려 깊게 생각하면 할수록 어른인 저는 마땅한 비유 대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이처럼 생각해 보려고 해도 진짜 아이의 순수한 상상을 흉내 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긍정적인 면을 본다면 무언가에 빗대어 설명하지 않아도 제가 가진 여러 가지 요소-사고와 태도, 생활양식, 겉모습 등-들이 대체 불가능한 나다운 모습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겨울이처럼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유년기를 지나 여름이처럼 사춘기의 질풍노도를 거친 후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성서사 <소금다이어리>를 선물 받았어요.


  얼마 전에는 2024년 다이어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직 2개월이 넘게 남았지만 새로운 시간이 한 박스가 오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어요. 그래서 이번 주에는 2023년을 보낼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 발행한 글에서 길 가에 떨어진 낙엽만큼이나 수두룩하게 사용한 '괜찮다'는 말로 2023년의 시간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괜찮다는 마법의 말 (brunch.co.kr)

 

  '정체된 느낌'은 올해 제가 가장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감정입니다. 아주 진중하고 무거웠던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지나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와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의 진척이 느리거나 속도가 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 상태를 바꿀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삶은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듯, 제 안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바꾸지 못할 때는 우연히 일상에 스며드는 인연과 일어나는 일이 주변 공기를 바꿔주는 에너자이저 역할을 해줄 때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자주 하는 말이지만 20대의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 운이 좋고, 잘해서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줄 알았는데 30대가 되면서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가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깊고 풍성한 하루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0대가 되어서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고 축복인 것이 분명하지요. 가을에는 수목원에서 본 누군가의 소원이 담고 있는, 바위 위에 얹어 놓은 작은 돌처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남은 한 해를 갈무리하며, 들꽃이 열매를 맺는 이야기와 나뭇가지에 달린 마지막 초록잎이 물들어 가는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습니다. 말을 아끼고 경청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 말이죠.


지금 이 순간 필요한 문장을 나눠주는 고마운 친구도 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다는 마법의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