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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l 17. 2024

모기가 날뛰지만 잡을 수가 없다

노안이 와서

  정말이지 약이 올라 죽겠어요. 아주!

  지난해만 해도 모기가 '애앵' 소리를 내며 살금살금 날아다녔는데, 요즘은 '여기가 내 안방이다'라고 여기는지 아주 훨훨 날아다닙니다. 분명히 소문이 난 것 같아요. 제가 모기를 못 잡는다고 말이죠.

  "저 언니 요즘 노안이 왔잖아. 헛스윙 98.9%야. 어제도 오늘도 손뼉만 쳤다니까."

  덩치만 컸지 노안이 와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천적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모기 세계에 났나 봅니다. 네, 그렇지요. 헛소문은 아닙니다. 날아다니는 모기를 잡고 싶은데 자꾸 손뼉만 자꾸 치고 있으니 제가 모기라도 박수를 받으며 더 신바람 나게 날아다닐 만해요.


  어제는 잠을 설쳤답니다. 무척이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깨지 않고 쭉 잠이 들었거든요. 왜냐하면 이 죽일 놈의 모기 때문입니다. 제주는 지금 덥고 습한 날이 이어지는 장마철이랍니다요. '꿀잠'을 자는 게 하루의 가장 큰 소원일 정도로 잠을 잠을 설치고 있어요. 그런데 어제저녁은 다르더라고요. 그나마 덜 습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아 에어컨을 끄고 거실과 부엌 창문을 열어 맞바람이 치게 해 두었어요. 에어컨 바람이 아무리 시원해도 신선한 바깥공기가 훨씬 더 정감 있고 좋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도 드나들고 모기도 넘나들며... 결국 얼마나 활기찬 밤을 보냈는지요. 게다가 박수도 열심히 쳤잖아요. 짝! 짝! 짝!


  그러고 보니 독서 교실에도 무임 승차하는 모기가 있습니다. 앞에 가는 어린이를 따라 얼떨결에 들어왔다가 고요함이 흐르는 독서 교실의 분위기에 깜짝 놀랐는지 마구 설치며 다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지도 않지요. 게다가 '애앵' 소리도 내지 않고 무음으로 날아다니는데 매번 어린이들에게 딱 걸리고 맙니다.


선생님, 모기 있어요.


  부정승차한 모기는 "쉿, 조용히 하라고."라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외치고 민원을 접수한 저는 응징을 하러 출동합니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벌금이 운임 요금의 30배라는데 우리 독서 교실에 몰래 들어와 소중한 피까지 훔쳐가려 했다면 이것은 정말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일입니다. 어린이들도 두려운 눈빛으로 날아다니는 모기를 뒤쫓고 있어요.

  '어린이들을 공포에 몰아넣다니, 내가 아주 한 방에 멋지게 잡아내겠어!'


  짝!

  이번에는 확실히 모기를 잡은 것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날개 달린 것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네요. 주변의 상황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딱 붙은 손바닥을 펴서 모기의 사체를 확인해도 될 것 같아요.

  짜악, 손바닥을 펼쳐 보았지요.

  아앗, 왜 아무것도 없을까요?

  이 대단한 모기는 무임승차만 가능한 게 아니라 순간이동까지 가능한 모기였어요. 분명히 여기에 있었고 그래서 여기에 짝, 하고 두 손을 마주 보며 힘껏 쳤는데 짠, 했더니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는 말입니다. 순간이동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선생님, 왜 박수를 치고 그래요?

  

  그러게요. 저는 지금 왜 박수를 치고 있었을까요? 모기를 응원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 노안.'

  시간을 거슬러 흐를 수는 없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온 노안이 억울하지만 어쩌면 눈부신 의술의 힘을 빌려 다시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새 눈'으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불평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다만 노안의 진행 속도가 의술의 발달보다 더디길 바랄 뿐이지요.

  "해리야, 너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그런 나이가 있단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리의 짠한 눈빛을 받으며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매일 이렇게 손뼉만 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죠. 지난주에는 아주 멋있게 잡았습니다. 단 한 번에 말이죠.

  쫙!

  소리부터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 기세를 몰아 지체 없이 손바닥을 펼쳐보았지요. 그랬더니 휘리리릭, 모기의 사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뭐예요. 아, 짧디 짧은 모기의 생.


오!! 오오!! 오!

  변성기라 목소리가 굵어진 무성이가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그동안 모기를 놓치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본 터라 이번에도 기대하지 않았다가 깜짝 놀란 얼굴인데, 표정에 비해 음이 무척 기계적입니다. 마치 모스 부호처럼 들리는 오-오오-오-. 그래도 괜찮습니다. 드디어 모기를 잡았으니까요. 지금 저에게 모기를 잡는다는 것은 신체의 변화에 적응 중이라는 더 큰 의미까지 담고 있거든요. 이번 달에는 모기를 총 두 마리 잡았으니까 다음 달에는 세 마리를 잡을 수 있겠지요. 거리도 잘 측정하고 행동의 개시도 타이밍을 잘 맞춰 다음 달 목표는 세 마리, 꼭 잡아보겠습니다.

  모기들아, 긴장하라고!




  다정한 독자님, 안녕하세요.

  어쩌다 보니 여름이면 '모기'를 소재한 글을 1년에 한 편씩 쓰는 것 같아요.

  올해는 노안이 와서 모기 잡기가 물고기를 잡는 것만큼 어려워졌어요. 적응해 봐야지요^^


  예전에 썼던 '모기'글이 발행된 줄 알았는데 아직 서랍에 있더라고요.

  조만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글도 발행할게요.


  편안하고 행복한 수요일을 보내세요^^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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